〇 몽진 중 선조의 비감한 시 한 수
임진왜란의 발발로 한양을 떠나 의주까지 몽진한 선조(宣祖)가 비감한 마음에 시 한 수를 읊었다.
국사창황일(國事蒼黃日) : 국사가 창황한 날에
수능곽이충(誰能郭李忠) : 누가 능히 곽 ․ 이(장군)의 충성을 다할 손가
거빈존대계(去邠存大計) : 도읍 떠남은 큰 계책 위함이라
회복장제공(恢復仗諸公) : 회복됨은 제공을 믿을 뿐
통곡관산월(慟哭關山月) : 관산의 달 보고 통곡하고
상심압수풍(傷心鴨水風) : 압록강 바람에 상심하노라
조신금일후(朝臣今日後) : 조정 신하들아 금일 이후에도
상가갱서동(尙可更西東) : 오히려 다시금 서인이니 동인이니 할 거나
선조가 왜적의 침입을 받아 정신없이 도성을 빠져나와 결국 변방인 의주까지 도달하여 머무르게 되었으니 그 비창한 마음이야 오죽하였겠나? 그러한 국가위란의 와중에서도 그의 눈에는 동인과 서인이 각축하며 싸우는 모습이 한심하였던 모양이다. 한양에서 바라보면 정겨웠을 달과 시원했을 바람마저 그저 울고 싶고 마음을 저미는 도구밖에 되어주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선조가 신하들의 붕당에 가슴 아파 한 이상으로 민초들은 선조를 포함해 지배층 전체의 무책임한 처사에 더 한층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평상시에는 누릴 것 다 누리면서 그들 위에 군림하다가 정작 전쟁이 나니 자기들부터 살겠다고 백성들을 버려두고 도망가기에 급급하였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왜군이 부산에 상륙한 지 불과 20여 일 만에 도성이 함락될 정도로 무능했던 것이 그것을 대변해준다. 이승만 대통령이 사수하겠다던 서울을 포기하고 몰래 빠져나간 뒤 한강 다리를 폭파해 선량한 시민들을 적의 수중에 떨어지게 했던 것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나중에 돌아와서 왜적에게 협조했느니, 북한군에 부역했느니 하여 그들을 족치면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렇게 되게 만든 것도 그들 지배층이요, 그렇게 되었다고 가혹한 처벌을 해대는 것도 또한 그들 무책임한 지도층이니 불쌍한 백성은 어이할거나.
'시심(詩心) > 한시(漢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개여울[견탄(犬灘)] (0) | 2012.08.11 |
---|---|
[스크랩] 시인과 배 (0) | 2012.08.11 |
[스크랩] 봄날 소양강의 풍취 (0) | 2012.08.11 |
[스크랩] 김부식의 오언고시 (0) | 2012.08.11 |
[스크랩] 이백의 시 한 수 (0) | 2012.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