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심(詩心)/한국의 시

길 위에서의 생각

지평견문 2022. 1. 29. 08:36

  < 길 위에서의 생각 >

                   - 류시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시심(詩心) > 한국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1월 끝자락 밤하늘에 서서  (0) 2022.01.31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0) 2022.01.30
길을 묻다  (0) 2022.01.28
1월  (0) 2022.01.26
일기장  (0) 2022.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