〇 각자가 자신의 일에 충실한 건강한 사회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공자(孔子)에게 정치에 대하여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군군신신(君君臣臣) 부부자자(父父子子)’라는 말로 응수하였다. ‘군군신신’은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다’는 것이요, ‘부부자자’는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다’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 엉뚱한 답변 같아 보이지만 이에 대해 제나라 경공은 이를 나름대로 긍정하면서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다면 비록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겠는가?”
라고 한탄하였다. 그러나 그는 공자의 말을 옳게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능히 쓰지 못했다고 하니 안다는 것과 그것을 실천한다는 것은 또한 별개임을 알 수 있다.
‘군군신신 부부자자’는 쉽게 말하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잘 실행하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생각 여하에 따라 그리 어렵지 않은 일로 보이지만 막상 실행이 쉽지 않음은 제나라 경공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어디 제나라 경공뿐이랴. 거개의 사람들이 그와 유사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느 것 하나 남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이 없다. 흔히 말하는 의식주만을 예로 들어보자. 옷을 만드는 사람이 아닐진대 누구나 다른 사람이 만든 옷을 입고 살게 마련이다. 먹는 것 또한 누군가 땀을 흘려 농사를 지었기에 우리가 그것에 의존하여 먹고 살 수 있는 것 아니던가? 집도 과연 자기가 직접 지어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렇듯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모두가 남에게 도움을 받고 살아가가고 있는 형편이다. 진상(陳相)이라는 사람이 맹자(孟子)에게 등(縢)나라 문공(文公)이 비록 어질기는 하지만 직접 밥을 해먹거나 농사를 짓지 않다는 점을 들어 도(道)를 알지 못한다고 한 적이 있다. 이때 맹자는 이를 호되게 비판하였다. 진상의 말대로 자기가 무엇이든 다 하자면 사람들이 매일 부지런히 쓸데없이 분주하기만 할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기계를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것을 농군에게 판다고 해서 농업에 방해될 것이 없으며, 농군이 농사를 지어 다른 것을 사들이는 것이 그것을 만든 사람들에게 장애가 될 리 없다는 것이다. 임금이 농사까지 지어가면서 백성들을 잘 다스리는 것은 불가능 한 일로, 우(禹)임금이 치수사업을 할 때 8년 동안이나 밖에서 지내며 그 집 앞을 세 번씩이나 지나가면서 미처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바빴는데 어느 사이 다른 것을 할 겨를이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맹자는 당시에 이미 분업의 합리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위에서 말하였듯 우리 모두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면 우리도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할 것이다. 그야말로 각자가 자신의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할 때 이웃과 더불어 잘 살아가는 첩경임을 보여준다. 그것이 다름 아닌 ‘군군신신 부부자자’의 요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는 이름난 정치가나 재벌들의 일탈된 행동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들이 가진 것이나 배운 것 따위가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어 보이건만 행동은 영 딴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주어진 일에 역할을 충실히 하며 지내겠지만 또한 상당수의 사람들이 정치가답지 않고, 기업가답지 않으며, 종교인, 교육자답지 않게 처신함으로써 사회의 좀이 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 그들에게 특별히 어려운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바로 주어진 조건에서 자신의 역할만을 충분히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과도한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건강과 행복》 2012년 7월호(단국대학교 병원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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