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에 태종이 울면서 직언을 구하다
《태종실록》 12권, 태종 6년 7월 23일(경술)조의 기사 전문은 이렇다.
임금이 감선(減膳 : 수라상의 음식을 줄임)하고 약주(藥酒)를 그만두었으며, 중외(中外)의 이죄(二罪) 이하의 죄수를 용서해 주었으니,
오래 가물기 때문이었다. 임금이 좌우 신하에게 이르기를,
"하늘이 비를 내리지 아니하는 것은 오직 과인(寡人)이 우매(愚昧)하기 때문이다."
하고, 눈물을 흘리니, 좌우의 신하가 황공[竦然]해 하고 감동(感動)하였다. 육조(六曹)·대간(臺諫)·장무(掌務)를 불러 말하였다.
"가뭄이 너무 심하다. 내 상벌(賞罰)을 행함에 밝지 못하고, 사람을 씀에 적당함을 잃고, 궁금(宮禁) 안에서의 복어(服御)가 제도에 지
나쳐서, 재변(災變)을 부른 것이 아닌가 염려되니, 마땅히 각각 직언(直言)하여 숨김이 없도록 하라. 내 그것을 고치겠다. 대신(大臣)
으로 정부(政府)·육조(六曹)의 당상(堂上)이나 각도(各道) 도관찰사(都觀察使)가 될 만한 자와, 직질(職秩)은 비록 낮더라도 장수(將帥)
가 될 만한 자, 대간(臺諫)이 될 만한 자의 이름을 갖추 아뢰도록 하라. 내 그들을 채용(採用)하겠다."
또 지신사 황희(黃喜)·대언 김과(金科)·윤사수(尹思修) 등을 불러 정치하는 대요[致治之要]를 극론하였다.
(* 이상은 모두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제공하는 인터넷 조선왕조실록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가뭄이 들었는데 임금이 반성한다는 내용이다. 그것도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과학적으로 보면 어찌 자연재해가 태종의 탓
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종은 혹시 자신이 정치를 잘못하여 그러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반성을 하며 신하들에게
바른 말로 고해 깨우쳐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아무리 천인합일설(天人合一說)의 생각을 가지고 있던 시대라 하더라도 임금이
이렇듯 울면서 백성을 생각하며 보다 정치를 잘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농민이 물 대포에 맞아 생명을 잃어도 책임자의 사과 한 마디 없고, 여당의 대표가 명분도 없는 단식투쟁을 하는 이 세상은 과연 5~6
백 년 전의 조선시대만도 못하단 말인가? 국가의 어려움이 있으면 발 벗고 나서서 이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정치일 터인데 어쩌자고
이 나라는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분란을 조장하고 사회를 시끄럽게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