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생각/페이스북의 글

담장을 넘어온 이웃집 감나무 가지를 잘라야 할 분명한 이유

지평견문 2016. 10. 21. 09:13


옥탑으로 오르는 계단에 이웃집의 감나무가 침범해 있다. 탐스러운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지만 내 몫이 아니니 그저 쳐다볼 뿐이다.

고인의 길이 앞에 있다던 퇴계 선생은 내게 또 고인이다. 일찍이 퇴계 선생은 이웃집의 밤나무에서 자기 집으로 떨어진 밤을 주어 담

장을 통해 이웃집으로 던졌다고 한다. 아이들이 주워 먹을까 걱정해서라고 했던가? 기억에 의존하자니 가물가물하기는 하다. 이를

아는 내가 어찌 남의 것에 탐을 내랴. 일찍이 오성 이항복 선생 또한 자기 집 감나무가 이웃집으로 넘어간 것을 이웃집에서 감을 따

먹자 이에 대해 항의해 승복을 받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나는 이제 막 이웃집 감나무의 가지를 자르고자 한다. 남의 것을 함부로 손댈 수 있겠느냐고 항의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

니 구구한 변명이라도 먼저 늘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이유인즉슨 그 감나무 가지가 내 눈에 거슬리기 때문이다. 그냥 그것을 쳐다보

는 게 거슬려서가 아니라 자칫하면 내 눈을 찌를 지도 모를 위험성에 노출되고 있기 때문에 부득이 그런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 것

이다.

 

나만 가지를 쳐버리는 줄 알았더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경우는 다르지만 요새 인구에 회자되는 미르인지, 용인지 하는 재단

과 관련하여 정부에서 가지치기를 할 모양이다. 사람들은 가지를 치고자 하는 쪽이나 쳐내야 할 가지나 서로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고

보는 것 같은 데 정작 그 쪽은 별 상관이 없는 그저 사회 정의 차원에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내보이는 것 같다.

 

가지를 치는 것도 그러고 보면 여러 가지임을 알 수 있다. 같은 가지를 쳐도 내가 가지를 치는 것은 나름대로 명분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지금 정부에서 가지를 치고자 하는 것도 그런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못내 궁금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다

만 문제의 가지를 도려내려 할 뿐이지만, 정부에서 하는 일에 대해서 사람들은 몇 개의 가지를 쳐내는 것만으로 정작 얼마나 흡족해할

까도 상당히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