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생각/페이스북의 글

호박씨를 까고 계신 어머니

지평견문 2016. 12. 22. 08:59


출근하며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점심은 아직 안 드셨지요?”

그려. 안 먹었지. ㅎㅎ

뭐하고 계세요?”

호박씨 까고 있다.”

아니, 연세가 몇이신데 아직도 호박씨를 까고 계세요?”

구구단도 지나갔으니, 호박씨나 까지 뭐해?”

 

어머니는 올해 연세가 82세이시다. 이제 곧 83세를 바라보고 계시다. 이제 9×9=81 가지고도 계산이 안 된다는 말씀이시다.

 

공자가 그랬던가? 부모님께서 연세가 더 드실 때마다 자식 된 도리는 한편으로는 기뻐하고 한편으로는 슬퍼해야 한다고. 이야기인즉슨 수()하시는 것을 기뻐해야 하는 것이고, 연로해지시는 것을 슬퍼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전화를 드려서 대부분 기분이 흐뭇해지니 전화위복(電話爲福)이라 할 수 있다. 가끔 막내 동생의 전화를 받을 때는 사실 겁부터 덜컥 날 때가 많다. 워낙 평소에 말이 없고 전화도 잘 안 하는 편인 데다 할 수 없을 때만 전화를 거니 그렇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그야말로 침묵리우스라고 할 만큼 말이 적은 편이다. 그러니 전화위화(電話爲禍)가 될까 은연중 걱정하는 셈이다.

 

그럼, 호박씨 많이 까세요.”

이제 오늘 까면 다 까서 더 할 것도 없다.”

 

그래도 분명 어머니는 무슨 일을 찾으셔서 해도 하실 분이지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