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생각/페이스북의 글
은행을 파시는 어머니
지평견문
2017. 1. 18. 08:57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아직 점심은 안 드셨지요?” (요즘 들어 바뀐 인사법이다.)
“그래, 어제 점심은 먹었다. ㅎㅎ”
“그러실 줄 알았어요. 그래, 어제(안성 장날) 은행은 많이 파셨어요?”
“사람은 많은 데 사는 사람은 별로 없더라고.”
“아하! 할아버지 말씀처럼 그 분들이 눈은 풍년인데 호주머니가 흉년이라서 그런 것 아닌가요?”
“글쎄, 그런지 모르지. 하여간 열 되 중에 서 되 밖에 못 팔았어.”
“그 정도면 많이 파신 거죠. 은행 한두 개도 아니고, 서 되나 파셨으면 많이 파셨다고 할 수 있죠.”
어머니께서 킬킬 웃으시면서, “그런가?” 하신다.
파신 은행이 서 되면 수백 개는 족히 될 터이고, 아직 못다 파신 남은 은행 수는 그 보다 훨씬 상회하니 어찌 대부호가 아니신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 동네 공회당에서 어머니 친구 분들과 10원 내기 민화투를 치시니 그 많은 재산이 공표될까 염려하심이리라.
최순실 씨가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면서 아무리 대통령까지 움직이며 치부를 했다한들 은행 수백 개를 하루 장날에 파시는 어머니의 부에 어찌 감히 견줄 수 있으랴. 그런 것이 누구는 우거지상으로 홀로 지내야 하는 것이고, 누구는 여유 있게 웃으며 나날을 향유하고 있는 차이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엄연한 현실에 접하면서 내게도 은행 몇 개 정도는 돌아오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며 마음을 설레어 보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 어머니의 장남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