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생각/페이스북의 글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평견문 2018. 6. 23. 08:13

태종실록을 읽다가 눈을 끄는 대목이 있어 그대로 옮겨와 보았다.

 

지선(知善)이 비현(非賢)이요, 용선(用善)이 위현(爲賢)이며, 지악(知惡)이 비난(非難)이요, 거악(去惡)이 위난(爲難)이라.

선선(善善)하되 이불능용(而不能用)하며, 오악(惡惡)하되 이불능거(而不能去), ()는 곽군지견계어춘추자(郭君之見戒於春秋者).

 

말하자면, ‘착한 사람을 알아보는 게 현명한 것이 아니고 착한 사람을 등용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며, 악한 사람을 알아보는 게 어려운

것이 아니고 악한 사람을 제거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공자가 지은 춘추(春秋)에 나오는 곽군(郭君)의 예에

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착한 사람에 대해 착하게 여겼지만 능히 등용하지 못하였고, 악한 이를 미워할 줄 은 알았으나 능히 물리치지

못하여 마침내 나라가 망하였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다. 국정 농단을 비롯해 이러저러한 불법을 자행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

람들의 경우 주변 사람들이 과연 그들이 그러한 줄 몰랐을까? 분명 알았겠지만 그것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이건, 아니면 두려워서

그랬건 어떤 바람직하지 못한 이유 때문에 애써 무시한 측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그런 것이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장기 지속적으로 볼 때 본인은 물론 국가나 사회적으로 큰 불행을 자초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사실은 비정상적인 경우가 적지 않았고, 정의를 부르짖는 이면에는 그들 자신이 바로 부정의한

경우가 어디 한둘이던가? 우리가 어떤 사람의 입을 믿기 전에 그의 몸가짐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될 수 있겠다.

 

하기야 나 자신도 무슨 일에 있어 어떻게 하면 바람직하고 어떻게 하면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

가 적지 않다. 그러니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비난하랴마는 내가 돌에 걸려 넘어지면 다른 사람들이라도 그 돌을 피해서 가라고 할 수는

있겠기에 이렇듯 감히 너스레를 떨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