身書不二[독서]

[스크랩] 이이화 자서전 <역사를 쓰다> - 역사를 바라보는 정직한 시선

지평견문 2012. 9. 17. 11:27

 

 


역사를 쓰다

저자
이이화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11-07-18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대중 속으로 들어간 역사학자, 이이화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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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의 자서전을 읽었다.  올해가 가기 전 자서전 한 권을 읽고자 한 계획은 이로써 달성했다.  그것도 재야 역사학계의 거목이라 표현해도 좋을 이이화의 자서전은 그가 집필한 한국통사를 비롯한 역사서를 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같단 느낌이 들었다.  역사학자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역사를 기록하는 자가 아니다.  시대에 대한 정직한 견해와 비판의 시선이 없다면 역사학자는 어용과 허구의 옷을 입는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라지만 지금 이 시대야 말로 역사를 되돌아봐야 할 중요한 지점이다.  결국 역사라고 하는 것은 현실을 밝게 비추고, 미래를 올곧게 설계하는 일이 아닌가?

 

이 자서전에서 우린 재야 역사학자가 탄생하는 과정을 개인과 시대라는 배경안에서 관측할 것이다.  역사를 핍진(逼眞)하게 서술하고자 하는 노력을 이이화는 자신의 전생애를 걸쳐 보여준다.  그것은 모든게 풍족히 갖추어진 연구실에 틀어박혀 사료를 뒤지고 앉아 있는 여느 학자의 태도가 아니라, 현실의 모든 정치,사회적 곤궁에 함께 참여하고 발언하는 용기있는 글쓰기를 표방한다. 

 

이이화는 1936년 대구 비산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학자였고 주역의 대가인 야산 이달 선생이었다.  그는 어렸을 적 야산에게서 주역과 한문을 깨쳤다.  평생 아버지와 애증의 관계였으나 놀랍게도 역사학자로서 그가 대성한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한학에 빚지고 있다.  그는 뛰어난 한문실력으로 훗날 사료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역사학자로서의 필수적 능력을 얻는다. 한국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출해 부산,여수,광주 등의 고아원을 떠돌았고 유일한 졸업장을 명문 광주고에서 얻는다. 

 

고학으로 서라벌예대 문창과에 입학, 문학 청년의 꿈을 키웠으나 결국 중퇴하고 아이스케끼,빈대약장수,술집웨이터 등 다양한 생의 이력을 경험한다.  이이화의 궁핍한 삶은 한국 전쟁 이후, 뭇 소시민의 삶의 각박함을 상징한다.  자서전의 초반은 개인사에 집중돼 있다.  청소년기 고학 생활에 대한 경험을 서술하고 있지만,  이것을 통해 독자는 개인이 거쳐온 한국 전쟁 이후 20세기 후반의 역사와 사회 지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의 경험담 자체가 20세기 한국사의 구체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한 개인이 맞이한 4.19나 5.16의 현장을 육안으로 살필 수 있다.

 

그가 역사학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이십 대 후반이었다.  어릴 적 갈고 닦은 한문 실력 덕분에 그는 동아일보사 출판부와 색인실 임시직 직원을 거쳐,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실, 서울대 규장각, 박정희가 공들여 설립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등에서 고전과 역사를 번역, 연구한다.  그때부터 그는 평생 글쓰는 일로 밥벌이를 대신한다.  문학을 포기하고 그가 얻은 것은 역사라는 학문이었다. 그는 역사연구에 자신의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가 역사를 연구하며 보낸 젊은 시절은 학벌에 대한 컴플렉스와 차별이 상존했다. 사료를 엉망으로 번역하고 역사를 오독하는 교수들이 넘치는 시대에, 그는 가난과 고학으로 대학 졸업장이란 간판은 없었지만 실력 하나만으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 책을 읽어가며 독자는 학벌이나 재력이 아닌 실력 하나로 결국은 인정받고야 만 자수성가형 역사학자와 만나게 된다.  오늘날 젊은 이들은 거의 대부분 대학을 나온다.  그들이 갖고 있는 스펙은 `유사 이래 최고'라고들 한다.  이이화의 모진 삶을 되돌아보며 학벌같은 정형화된 스펙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분야에 대한 진정한 열정과 능력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자서전은 그러한 면에서도 독해가 가능하다.

 

" 그런가 하면 박사논문이나 저술 또는 자서전마저 돈을 주고 사서 내는 부류들이 있다.  이른바 대필이다. 이는 표절보다 더 비양심적인 행위라고 본다. 이런 자들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이 널려 있을 뿐만 아니라 떡하니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이화 <역사를 쓰다>, p.173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자서전의 가치는 역사를 보는 정직한 눈을 가진 한 역사학자의 탄생에 있다. 그는 100년 전 동학농민전쟁의 의미를 되찾는데 주력했고, `역사바로잡기운동'이나 `과거사청산' 등의 운동을 주도한다.  `한국전 이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상임대표'를 맡는 등의 공적인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작업에도 힘을 보탰다.  1995년부터 쓰기 시작한 한길사의 <한국통사 시리즈> 전 22권을 10년 동안 집필하여 완성한 것은 필생의 최대 업적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독도사 왜곡에는 온 국민이 분노하면서도, 진정 우린 자신의 역사를 왜곡하는 시도와 꼼수에는 눈을 감고 넘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서술이다.   역사는 역사학자들의 전유물도 아니다. 역사의식은 역사학자만이 가져야 하는 것은 더욱더 아니다.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가르치는 교과서임을 우린 안다.  역사의식이 없다는 것은 인간을 한갓 경제적 동물로 격하시킨다.  잘먹고 잘사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았기에 우린 도덕적 흠결이 가득한 지도자도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식으로 자위하기 일수였다.  마치 오늘날 박정희 독재정권을 오직 경제적 이유로 미화하려는 집단이 가진 의식과 일맥상통한다. 오늘 우리 시대의 소시민이 당면한 피폐함은 그같은 역사의식의 부재함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결과는 아닐까?

 

"특히 군사 쿠테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온갖 정치적 파행과 폭압을 자행하면서 18년 장기 독재를 통해 국민을 현혹하는 갖가지 이념공작을 벌였다. `반공' `멸공'을 내세워 간첩사건을 조작하고, 저항하는 학생들을 강제 입대시켰으며, 무고한 시민을 불법 체포해 고문을 자행했다. <민족일보> 사건, 통혁당 사건,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등등 그 사례는 더 나열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불법 감금과 고문으로 희생된 무수한 의문사는 아직도 다 밝혀지지 않았다."   이이화 <역사를 쓰다>, p. 413

 

역사에도 양면성이 있다면, 먼저 과오를 인정,사과하고 공로를 논하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오늘 이 시대를 보자. 남북관계는 10년전으로 후퇴했다.  남북이 사이가 멀어지는 이 때,  중국은 북한과 부쩍 가까워졌다.  교역규모 면에서 최대인 중국과의 관계는 친미일색인 편향외교로 난관에 봉착해 있다.  날치기로 통과된 한미FTA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알길 없다.  집권당의 비서를 통해 국가 기관인 선관위가 사이버 테러를 당했지만, 주류 방송과 언론은 어물쩍 넘어갈 기세이고 경찰의 수사 결과는 초등학생이 이해하기에도 황당할 지경이다.  27살짜리의 단독범행이라니, 내 나이 스물 일곱으로 필름을 돌려보며 그 무모함을 상상해본다.

 

역사학자 이이화의 자서전을 읽으며 한 역사학자가 민중과 서민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려는 시도를 엿본다.   감시와 비판의 시선이 없다면 앞으로 우린 새롭게 등장한 4개 채널 종편의 막무가내 막장뉴스와 FTA로 수입되는 채리값이 싸질 거라는 공영방송의 지저귐을 진실로 여길 것이다. 역사는 역사학자가 쓰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쓴다.  역사의식을 갖춘 시민이 되어야 한다.  정직한 관점과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민중과 대중의 시선으로 역사를 다시보려는 노력을 역사학자 이이화는 평생토록 이어왔다.  왜 민중과 대중의 시선이 중요한가?  역사의 주체는 1%의 권력이 아니라 99%의 민중이기 때문이다.  우린 권력자의 호의호식(好衣好食)을 위해서가 아닌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다.

 

 

 

 

 

 

2011.12.15

출처 : 개츠비의 독서일기 2.0
글쓴이 : 개츠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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