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견문 2021. 12. 19. 07:25

< 물마름 >

 

       -  김소월

 

주으린 새무리는 마른 나무의

해지는 가지에서 재갈이던 때.

온종일 흐르던 물 그도 곤(困)하여

놀지는 골짜기에 목이 메던 때.

 

그 누가 알았으랴 한쪽 구름도

걸려서 흐느끼는 외로운 영(嶺)을

숨차게 올라서는 여윈 길손이

달고 쓴 맛이라면 다 겪은 줄을.

 

그곳이 어디드냐 남이장군(南怡將軍)이

말 먹여 물 찌었던 푸른 강(江)물이

지금에 다시 흘러 둑을 넘치는

천백리(千百里) 두만강(豆滿江)이 예서 백십리(百十里).

 

무산(茂山)의 큰 고개가 예가 아니냐

누구나 예로부터 의(義)를 위하여

싸우다 못 이기면 몸을 숨겨서

한때의 못난이가 되는 법이라.

 

그 누가 생각하랴 삼백년래(三百年來)에

참아 받지 다 못할 한(恨)과 모욕(侮辱)을

못 이겨 칼을 잡고 일어섰다가

인력(人力)의 다함에서 쓰러진 줄을.

 

부러진 대쪽으로 활을 메우고

녹슬은 호미쇠로 칼을 별러서

도독(毒)된 삼천리(三千里)에 북을 울리며

정의(正義)의 기(旗)를 들던 그 사람이여.

 

그 누가 기억(記憶)하랴 다복동(多福洞)에서

피 물든 옷을 입고 외치던 일을

정주성(定州城) 하룻밤의 지는 달빛에

애그친 그 가슴이 숫기된 줄을.

 

물위의 뜬 마름에 아침 이슬을

불붙는 산(山)마루에 피었던 꽃을

지금에 우러르며 나는 우노라

이루며 못 이룸에 박(薄)한 이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