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견문 2022. 2. 14. 23:49

< 떠나 보자 >

 

- 원 성

 

외기러기 떠나가듯 떠나 보자

사랑의 향기 짙은 곳으로

어디엔가 눈 맑고 고운 소녀가 물을 건네 준다면

나는 소중한 염주를 쥐여 줘야지

바람이 등을 밀어 정처 없이 걷다 보면

늙은 소나무 드넓은 가슴으로 나를 드리워 주겠지

떠난다는 것.

알 수 없는 미지의 땅으로 첫발을 내딛는다는 것.

회색빛 하늘이 굳은 의식을 무너뜨리고

차가운 공기가 내 안을 청명하게 하면

그것은 이미 퇴화된 심연 깊은 곳의 감성을 되살리는

생명수와도 같은 것

혼자라는 서글픔이 함께할지라도

고독이란 놈도 때론 훌륭한 도반이 되지

빈 방 한 켠 좌복 위에서

작은 봇짐을 매어 본다.

그토록 마음 속에서 고대하던 오늘,

떠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