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심(詩心)/한국의 시

하다못해 죽어 달려가 올라

지평견문 2022. 3. 14. 23:21

< 하다못해 죽어 달려가 올라 >

 

                 - 김소월

 

아주 나는 바랄 것 더 없노라

빛이랴 허공이랴,

소리만 남은 내 노래를

바람에나 띄워서 보낼 밖에.

하다못해 죽어 달겨가 올라

좀 더 높은 데서나 보았으면!

 

한세상 다 살아도

살은 뒤 없을 것을,

내가 다 아노라 지금까지

살아서 이만큼 자랐으니

예전에 지내 본 모든 일을

살았다고 이를 수 있을진댄!

 

물가의 닳아져 널린 굴꺼풀에

붉은 가시덤불 뻗어 늙고

어둑어둑 저문 날을

비바람에 울지는 돌무더기

하다못해 죽어 달려가 올라

밤의 고요한 때라도 지켰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