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심(詩心)/한국의 시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來日)은 이길 것이다

지평견문 2022. 4. 21. 23:16

<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來日)은 이길 것이다 >

 

- 신동엽

 

말 없어도 우리는 알고 있다.

내 옆에는 네가 네 옆에는

또 다른 가슴들이

가슴 태우며

한 가지 염원으로

행진

 

말 없어도 우리는 알고 있다.

내 앞에는 사랑이 사랑 앞에는 죽음이

아우성 죽이며 억()진 나날

넘어갔음을.

 

우리는 이길 것이다

구두 밟힌 목덜미

생풀 뜯은 어머니

어둔 날 눈 빼앗겼어도.

 

우리는 알고 있다.

오백년 한양

어리석은 자 떼 아직

몰려 있음을.

 

우리들 입은 다문다.

이 밤 함께 겪는

가난하고 서러운

안 죽을 젊은이.

 

눈은 포도 위

묘향산 기슭에도

속리산 동학골

나려 쌓일지라도

열 사람 만 사람의 주먹팔은

묵묵히

한 가지 염원으로

행진

 

고을마다 사랑방 찌갯그릇 앞

우리들 두쪽 난 조국의 운명을 입술 깨물며

 

오늘은 그들의 소굴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 이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