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함이 바른 것을 범할 수 없다
〇 사악함이 바른 것을 범할 수 없다
한(漢)나라 때 왕부(王符)가 지은 《잠부론(潛夫論)》이라는 책에는
“요사스러움이 덕(德)을 이길 수 없고 사악한 것이 바른 것을 범할 수 없음은 하늘의 도리이다.”
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서 ‘사악한 것이 바른 것을 범할 수 없다’는 말은 ‘사불벌정(邪不伐正)이라 하는 바, 이는 ‘사불범정(邪不犯正)’이라고도 한다.
때로 우리는 부정의가 정의를 압도하는 듯한 여러 현상들을 많이 접하면서 흥분하기도 하지만 긴 역사적 안목으로 보면 그래도 정의가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추구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 아니 역사는 길고 보면 일시적 승리에 도취하여 악을 일삼을 경우 두고두고 그 악행이 인구에 회자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가하면 덕행 또한 세월에 상관없이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연면히 이어져가는 것이다. 종교에서 말하듯이 내세가 있다고 한다면 찰나를 위해 영겁을 희생하는 우를 자행해서야 되겠는가?
사악함이나 거짓은 남을 해칠 뿐 아니라 부메랑이 되어 결국 자신도 해치게 된다. 일시적으로 사악함이 승리할지 몰라도 시간은 정의의 편이다. 기묘사화 때 지치(至治)주의를 표방하며 민생을 위한 개혁정치를 실시하다 훈구파에게 당한 조광조, 김식 등은 비록 현실정치에 좌절하였지만 차후 조선의 정치적 지향점을 제시하였다. 그들을 제거한 훈구파들은 간신배로 단죄되었고, 조광조 등 기묘명현들은 정인군자로 추앙을 받으며 부활하여 이상적 인물로 살아남았다. 현실 정치에 승리한 것으로 보이는 우남 이승만은 친일파들과의 타협, 사사오입개헌, 관제데모, 부정선거 등의 얼룩진 행보 위에 오명을 남긴 반면 비록 현실 정치에서 쓴 맛을 보고 안두희의 총탄에 쓰러진 백범 김구는 우직하리만치 원칙에 충실하고 당당하였기에 민족 지도자라서의 굳건한 위상을 차지하였다.
사(邪)와 정(正). 누구나 사악한 것이 잘못이고 바른 것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구는 사악한 길을 걷고, 누구는 정의의 길을 걷는다. 옳고 그름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구태여 사악한 길을 밟는 것은 이익을 탐하기 때문이다. 당장 꿀이 단 것만 보이고 그것이 칼의 끝에 발라져 있는 것은 생각지 못한다. 그저 달콤한 먹이 앞에 옳고 그름의 판단이 흐려져 ‘정’을 버리고 ‘사’를 선택하게 되는 바 그것이 큰 이익을 해치고 작은 이익을 얻는데 지나지 않음을 못내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소탐대실은 바로 그러한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