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상(馬上)에서 다스릴 수는 없다
○ 마상(馬上)에서 다스릴 수는 없다.
육가(陸賈)가 기회 있을 때마다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의 중요성을 말하자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그를 비난하며 말하기를,
“공(功 : 국가 건립 따위)은 말 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니 어찌 시경 ․ 서경 따위나 공부할 것인가?”
라 하였다. 그러자 육가가 말하기를,
“말 위에서 (나라를) 얻을 수는 있지만 어찌 가히 말 위에서 다스릴 수야 있겠습니까? 또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은 거슬리는 것을 취해서 순종함으로 지켜 문무(文武)를 같이 썼으니 (그것이) 길고 오래가는 방법입니다.”
라 하였다. 육가의 말은 곧 무공(武功)을 세워 나라를 일으킬 수는 있지만 결코 무단통치로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유방도 크게 깨달은 바 있어 이후로 유학자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그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한 나라가 그런대로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누구이건 기왕에 나선 선거라면 반드시 이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선거에서 이겨 당선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작 시작은 그때부터라 할 수 있다.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 몸을 최대한 낮추었다가 뜻을 이룬 다음 얼마 되지 않아 섬겨할 대상에게 오히려 군림하려고 든다면 그것은 본래 그러한 것을 마련한 취지 자체가 무색할 뿐 아니라 국민에 대한 배반이 되는 것임은 물론이다.
당선된 뒤에 마땅히 열과 성을 다해서 국민의 뜻을 정성스럽게 받들어야 하겠지만 당선되는 과정에서도 또한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일관해야 한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은 결국 온당하지 못한 처신으로 이어지는 만큼 질 때 지더라도 정정당당한 정도를 걸어야한다. 정도를 걷다 일시 질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의 진심이 국민의 심금을 울리게 되면 국민들이 결코 언제까지 외면할 수만은 없게 될 것이다. 정치는 현실이라는 이유를 들어 그 누구 하나 그런 실험을 하지 않게 되니 늘 그 나물에 그 나물로 여기는 풍토에서 국민들이 별로 기대하지 않았을 뿐이다. 국민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우러나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여길 그런 인물이 그리운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