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묵적과 양주를 울렸나?
〇 무엇이 묵적과 양주를 울렸나?
불교에서 제행(諸行)이 무상(無常)하다고 했던가? 구태여 불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동서고금을 통해 아직까지 변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세상일이 그렇듯 무상하고 변화가 많은 것을 사로(絲路)라고 한다. 이 말은 중국 전국시대 묵적(墨翟)과 양주(楊朱)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묵적은 흔히 묵자(墨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누임실이 무슨 색으로든 물을 들일 수 있음을 보고 울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양주는 갈림길 앞에서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있음을 생각하고 그 또한 울었다는 것이다. 묵적이 실을 보고 울고 양주가 길을 보고 운데서 실[사(絲)]과 길[로(路)]의 글자가 합하여 이루어진 단어가 사로다. 두 사람은 왜 그렇듯 변화무상한 세상사에 특별히 슬픈 눈물을 뿌렸던 것일까?
실을 염색하여 무슨 색으로든 물들일 수 있다면 사람 또한 착하게 될 수도 있고 악하게도 될 수 있을 터이다. 마찬가지로 갈림길 중 어느 길로도 갈 수 있다면 선행의 길을 택할 수도 있고 악행의 길을 걸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묵적이나 양주는 거기에 그만 좌절하고 만 것은 아닐까?
그런데 《맹자》에 보면 묵적과 양주의 생활 방식은 아주 다른 것으로 나타나 있다. 묵적은 남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될 수 있게 한다면 정수리부터 머리까지 다 닳는 한이 있어도 이를 실행한다는 것이었고, 양주는 남을 위해서는 머리카락 하나라도 뽑아줄 줄 모르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양주는 그렇다 쳐도 맹자가 묵적까지 이단으로 취급하고 있던 이유는 그들이 모두 너무 극단적이라 하여 중용을 잃은 처사로 보았던 때문인 듯하다.
어쨌든 우리는 종종 사로의 기로에서 시험에 들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선택을 해야 하는 데 공자나 맹자를 따르면 그나마 그 기준을 세우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공자가 이(利)를 보면 의(義)를 생각하라고 했고, 맹자는 군자와 소인의 구별이 바로 의(義)와 이(利) 사이에서 결정된다고 보았다. 이를 믿고 따른 이가 안중근 의사 같은 경우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여태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사로를 만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묵적이나 양주처럼 울고만 있을 수 없다고 할 때 공자나 맹자, 안중근 의사의 말이나 행태를 참고로 삼으면 그래도 아주 잘못되게 물들여지거나 그른 길을 가지는 않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