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아내가 무섭고 말구
○ 그럼, 아내가 무섭고 말구
고려 충렬왕 때 박유(朴楡)가 상소하였다.
“우리나라는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은 데 계급이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아내를 한 명으로 제한한 데다 아들이 없는 사람도 감히 첩을 두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들어와 사는 외국인에게는 제한 없이 아내를 얻게 하기 때문에 신(臣)은 인물이 모두 북쪽으로 넘어갈까 염려됩니다.
관리들에게 첩을 둘 수 있게 하되 그 계급에 따라 수를 조정하여 일반 사람들에게도 아내와 첩을 한 명씩 두게 하고 첩들이 낳은 자식도 적자(嫡子)와 마찬가지로 벼슬할 수 있게 한다면 배우자를 얻지 못하는 사람도 없게 될 뿐 아니라 사람도 다른 나라로 흘러나가지 않아 인구가 날로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여자들이 이 말을 전해 듣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는데, 당시에 한 대신(大臣)이 그 아내가 무서워 그 건의를 무시해버렸다고 한다.
이상은 조선 영조시기에 활약한 실학자 성호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남녀의 성비가 서로 맞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여기에 차이가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권력이나 부의 차이에서 일부다처제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성비의 불균형에서 비롯되는 일부다처제도 존재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자연적 현상이기도 하다. 반대로 남성이 많고 여성의 수가 현저히 적다면 일처다부제도 가능하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여러 형태의 결혼 관습이 지구상에 온존하고 있는 것이 고고학이나 인류학에서 실제 소개되고 있다.
일목국(一目國)에 가면 두 눈을 가진 사람이 비정상적인 것처럼 누가 우리들과 다르다고 해서 무시하거나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일상 생활상에 나타나는 일 중에도 서로 다른 면들이 공존하여 뒤얽혀 있음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지나치게 내 위주로 따르기를 강조하기에 앞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배려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필수라 해야 할 것이다.
아내를 두려워 한 위의 대신이 어떤 의미에서 시대를 거스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또 하나의 우리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내를 두려워할 줄 아는 자들이 확실한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으리니, 그것이 그나마 오늘날 남자 된 이들의 살아남는 현명한 방법은 아닐 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