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도 옮겨 간다
〇 메뚜기도 옮겨 간다
후한(後漢) 때 탁무(卓茂)가 유술(儒術)로 천거되어 시랑(侍郞)이 되었다가 밀(密) 지역의 수령으로 자리를 옮겼다. 몇 년 후 그 곳에 교화(敎化)가 크게 행해져 사람들은 길에 떨어진 물건도 줍지 않게 되었다. 평제(平帝) 때 천하에 메뚜기 떼가 창궐하여 하남(河南)의 20여 현(縣)이 모두 그 재해를 입었으나 홀로 탁무가 다스리는 밀현(密縣)의 경계 안으로는 메뚜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후한서(後漢書)》 탁무전(卓茂傳) -
다른 지역이 모두 메뚜기 피해를 보았을 때 유독 탁무가 다스리는 지역에만 메뚜기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말은 곧 메뚜기가 옮겨간다는 말[천황(遷蝗)]로 등치되었다. . 메뚜기가 옮겨간다는 것은 특정 코미디언의 거취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탁무의 위와 같은 일화와 관련하여 메뚜기가 옮겨간다[천황]는 말은 정치가 맑고 교화가 크게 행해지는 것을 이르는 말로써 쓰이게 되었다. 어찌 보면 메뚜기 같은 미물도 좋은 정치 앞에는 힘을 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 위와 같은 일이 있었다 해도 그것은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그것 보다 이런 경우를 상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흉년이나 홍수와 같은 재해는 성군이라는 세종 시대나 폭군이라는 연산군 대에 마찬가지로 발생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세종 같으면 미리 대비하여 그 피해를 최소화시키고 빨리 회복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데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반면에 연산군 같은 경우 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주지육림에 정신이 팔려 국고를 탕진해 가며 속수무책일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거기에서 과연 어느 것이 또 다른 천황(遷蝗)의 경지가 될 수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