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생각/정의(正義 )

말 하지 않는 벌

지평견문 2013. 5. 28. 05:19

                      ○ 말 하지 않는 벌

 

    송(宋)나라 제도에서 어사(御史)가 어사대(御史臺)에 들어가 100일이 찼는데도 간(諫)하는 소장(疏章)이 없으면 대(臺)를 욕되게 한 벌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송나라 때의 어사는 조선시대 암행어사와는 그 성격을 조금 달리한다. 송대의 어사는 간관(諫官)으로서 백관(百官 : 모든 관원)을 규찰하는 일을 관장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언관제도로서 삼사(三司)가 있었으니, 곧 홍문관, 사간원, 사헌부를 이른다. 이들의 역할이 약간씩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흔히 이들 삼사는 언론을 장악하게 되는데 재상들의 비리는 물론 임금의 잘못을 간하는 데도 이들이 앞장섰다. 《한비자(韓非子)》에 보면 용의 비늘 가운데 유독 거꾸로 된 비늘이 하나 있어 이를 역린(逆鱗)이라고 한다고 하고 있다. 그 역린을 잘못 건드리면 용이 몹시 성을 내어 화를 입힌다고 하는데, 임금의 뜻을 거스르며 간하는 것은 마치 역린을 건드리는 것과도 같아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국가에서 금주령(禁酒令)이 내려도 사간원(司諫院) 관원들만큼은 여기에서 제외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평소에 그들이 과감히 간할 수 있는 담력을 키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해야 할 말을 필요로 할 때 목숨도 돌보지 않으며 꼬장꼬장 할 말을 다했던 선비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조선왕조는 500여 년씩이나 유지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저 시키는 대로 말만 잘 듣는 추종자만 주변에 포열해 있는 지도자는 결코 행복한 지도자라 할 수 없다. 코드가 맞는 것도 필요하지만 때로 정직하고 과감하게 충간할 수 있는 수하가 많이 있어야 그 지도자는 보다 훌륭한 일을 수행해 낼 수 있다. 이익이나 권세를 획득할 수 있을 때는 아부나 아첨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든지 넘쳐 날 수 있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그 이권이 없다고 여겨질 때는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다고 하는 점도 어쩔 수 없는 현실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당장은 입에 쓰거나 귀에 거슬릴지라도 명약이나 충언을 외면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