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생각/정의(正義 )

슬픔이나 즐거움을 지닌 자

지평견문 2013. 6. 4. 05:26

                   ○ 슬픔이나 즐거움을 지닌 자

 

    《회남자(淮南子)》에 “슬픔을 지닌 자는 노래를 들어도 울음을 울고 즐거움을 지닌 자는 곡성을 들어도 웃는 법이니, 지닌 것이 시켜서 그러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남의 기쁨을 같이 기뻐하고 남의 슬픔을 함께 한다는 것이 말은 쉽지만 실상 그렇게 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남의 불행이나 행운에 대해서 같이 슬퍼하거나 기뻐해준다고 해도 어찌 당사자와 똑 같을 수야 있겠는가. 다만 그런 노력을 통해서 고락을 함께 하고자 하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온전하게 일치하는 것을 구할 수는 없다 하겠다.

 

    하물며 이해관계를 전혀 다르게 하는 이익 집단 사이에서는 더군다나 그 간극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여당과 야당 간에 느끼는 강도나 표현이 제각기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내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상대방도 그럴 수 있음을 인식하는 데 있다. 양측의 의견이 서로 다르고 다른 만큼 설전을 하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 중에 공통부분을 찾아내고 설득하는 과정에 민주주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것조차 아예 무시하고 당파 싸움만 하고 있는 것으로 여기며 의견이 합일되기만을 기다린다면 오히려 그것이 훨씬 가공할 우환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즐거워 할 때 상대방은 슬플 수 있고, 내가 슬퍼할 때 상대방이 즐거울 수도 있음을 상호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서 공존의 중요한 법칙이 작동하고 있다. 한쪽으로의 지나친 경도는 결국 양측 모두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만큼 상대측에 대한 지나친 배격은 스스로마저 위태롭게 한다.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고 하더라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공동선을 추구하는 목표가 같다면 서로 설득하고 대화할 여지는 충분히 있는 것이다. 다소 시간이 걸리고 돌아가더라도 대화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중시해야 불협화음이 그만큼 적어지고 서로 상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제발 좀 혼자 모든 것을 다 하겠다거나 지나치게 서두르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