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者樂山[등산]/백두대간

신백두대간 3-2 : 여원재-복성이재

지평견문 2013. 6. 6. 09:25

 < 신백두대간 3-2 : 여원재-복성이재 >

 

     5시에 출발하기로 한 관계로 4시쯤 모두 기상하였다. 안채와 바깥채 두 팀으로 각각 4명, 5명씩 잠을 잤다. 나는 바깥채에서 잠을 잤다. 엊저녁 고기 먹다 금니가 빠진 친구는 금을 다루는 김가요, 어제 밤 잠자리에서 열심히 이를 갈아댄 친구는 이가였다. 나를 비롯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코를 곤 것으로 보인다.

   아침상은 안채 거실에 마련되었다. 일찌감치 일어나 아침상을 차렸을 아주머니의 노고가 정겹다. 두부가 들어간 된장국에 가자미구이를 곁들여 요기를 하고 우리는 5시에 여원재 민박집을 떠났다.     
        

- 하룻밤 유숙한 여원재의 민박집을 떠나 다시 출발선상에 서다

 

 

 

 

 

     우리는 출발에 앞서 간단히 기념촬영을 하고 새벽을 가르며 힘찬 출발을 하였다. 이곳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전적지 주변이기도 하지만 동학농민과 관련된 곳이기도 하여 이를 알려주는 간판도 잠깐 들여다 보았다. 여원재에 얽힌 전설을 보여주는 간판과 우리가 갈 길을 알려주는 안내 지도판도 눈에 띄었다.         

                     

     도로를 따라 마을길로 접어드니 이정표 하나가 무참이 쓰러진 채 우리를 맞았다. 요즈음 산행기에는 마을을 거쳐 가는 길을 알려준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쓰러져있는 이정표가 마음에 걸렸다. 지피에스까지 동원하여 논란을 벌이다 3명은 그대로 마을길로 가기로 하고 6명은 이정표 위쪽의 무덤 곁으로 길을 찾아 나섰다. 이슬이

채 마르지 않아 바지가 흠뻑 젖어들었지만 아랑곳할 바는 못되었다. 잠시 후 우리는 마루금 본래의 길을 알려주는 다른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었다.                            

                              

- 뭘 보호하기 위함이었을까? 팻말을 눕혀 다른 길로 유도하였건만... 우리는 그래도 원길을 찾아나섰다..

 

 

 

- 원래 길이 맞았음을 보여주는 이정표...

 

                                      

 

  잠시 흩어졌던 일행들이 만날 즈음 새벽 하늘이 터지기 시작하였다. 태양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동녘 하늘 위로 붉은 노을이 먼저 선을 보였다. 우리는 가던 발길을

멈춘 채 곧 떠오르게 되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 때가 대략 5시 30분 무렵이었다. 일출을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백두대간 길을 가다 맞이한 일출이었기에 좀 더 새롭게 다

가왔다. 갈길이야 멀었지만 그 아름다운 경관에 넔을 잃고 쳐다보고 셔터를 눌러대는 호사쯤이야 누려야 하지 않을손가.                                                                   

 

.

 

 

 

 

 

 

     일출에 빼앗겼던 마음을 수습하고 앞서 간 친구들의 꽁무니를 좇아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가는 길 옆에 가끔 묘소가 보이는데 중부 지방과는 영 모습이 다르다. 묘소 뒤에 병풍처럼 둘러 있는 둔덕이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묘소 하나에도 지방적 특색을 담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 중부지방과는 분묘의 형식이 판연히 다르다

 

- 한걸음 한걸음 보태다 보면 어느 덧 목표지점까지

 

- 빽빽한 나뭇사이로 햇볕이 파고 들다

 

- 여기서는 힘든 체를 해야 되는데, 분위기 파악을 제대로 못함...

 

- 포곡이 제대로 힘든 표정을 잡았는데, 뒤에서 뭐 하는 겨... 너무 편안해 보인다 하여 NG..

 

- 바위며, 나무, 심지어 풀 한 포기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할 우리의 자연 유산

 

- 그게 그거지만 어떤 방향에 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세상 또한 그러하리라.

 

- 계단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어디를 바라보는 지..

 

- 이제 모두 스틱이라도 들어보자는 주문을 따르다 보니, 그런데 느닷없이 낮에 웬 검은 별이 떴는 고?

 

- 큰 산은 멀어 작아지고 가까운 소나무는 속절없이 큰 체 한다

 

- 마침내 고남산 정상에 올랐어라...

 

 

- 푸른 산등성이 너머로 가지런히 논밭과 마을이 어우러지고, 그 너머에는 다시 쭈빗쭈빗 산이 엿본다.

 

- 어떤 게 맞나? 푸를 록(綠), 푸를 청(靑)... 다 푸르다고 하니 원, 녹색 산 위로 청색 하늘이 푸르디 푸르다.

 

- 고남산의 철탑

 

- 산이라기에는 차라리 섬처럼 여겨지는 산

 

- 제대로 터치된 한 폭의 동양화인양, 산 넘어 산이 엷은 색채로 다가선다.

 

- 정작 고남산 정상석은 고남산 정상 보다 조금 아래에 있으니, 이게 비정상 아닌가?

 

   정상을 가까이 숨겨둔 채 암벽이 버티고 있다. 그래보았자 치렁치렁 밧줄이 늘어져 있으니 어찌 족히 위협거리가 될 것인가? 하나 하나 줄지어 밧줄에 매달려 몸을 솟구친다. 포곡이 먼저 올라가 포즈를 취할 것을 주문하니 누구의 명이라고 이를 어길손가? 거의 비슷한 폼이 모습만 다른 채 대량생산된다. 이왕 주문을 받았을 바에는 억지로라도 힘들어 하는 표정을 지어야 하거늘 그게 또 우스워 벙긋거리니 작품이 말이 아니다.                                                                                                             

                                                                                                        

   이번에는 또 계단에 앉아 보란다. 이왕 모델이 되어주는 마당에 비싸게 굴 것도 아니라 또 그렇게 옹기종기 모여 주문에 응한다. 스틱을 들라면 또 그렇게  들어보기도 하면서....     마침내 고남산 정상에 올랐다(해발 846 미터, 07시 15분). 그나마 오늘 산행에 있어 가장 높은 봉우리라 한다. 정상에 모였으니 정상회담은 아닐지라도  정상 기념촬영이 없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정작 정상석은 몇 미터 아래 평평한 곳에 따로 세워져 있었다. 도대체 어디가 정상인가? 이야말로 비정상적인 상황이 아닐런지?         

 

 

 

- 그래도 꽃일 때가 좋았다고 여길 만한 할미꽃들의 잔상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 산에 가다 보면 어김없이 길을 막고 나서는 장애물이 있게 마련이다.

 

- 이번에는 둥글레 군락지가 눈길을 끈다. 생을 마감하여 차가 되기보다 그래도 이게 낫지 않을까?

 

 

 

 

 

- 찔레꽃이었던가?

 

 

- 매요리에서 마난 꽃들

 

- 매요리에서 요리 아닌 막걸리를 사서 주욱 한잔, (박)돈 없으니 빈대떡도 곁들여 가며...

 

       정상석 주변에서 잠시 쉬며 간식을 들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지체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매요리를 향했다. 소나무 숲이 이어지다간 때로   둥글레 군락지가 나타나기도 한다. 찔레꽃을 위시하여 이름모를 꽃이라도 지나칠 땐 잠시나마 눈길을 주어보기도 하면서 길은 이어졌다. 쓰러진 나무가 앞을 막고 나서는 것도 산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낮으면 넘어가고 높으면 고개를 숙이고 지나간다. 산은 이렇듯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걸림돌을 통해 극복할 것을 배우게 되고  때로  머리나 허리를 숙여 겸손을 익힌다. 한참을 가다보니 언제나 나타날까 싶던 매요리(남원군 운봉읍)도 발 밑에 다가왔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매요리에는 할머니가 경영하는 매요휴게소가 있다. 거동이 불편하시지만 과객에게 막걸리 잔이나 빈대떡을 안기지 못할 정도는 아니셨기에 이미 먼저 당도한 친구들이 판을 깔았다. 늦게 도착했다고 어찌 한 사발 막걸리를 마다할 우리이겠는가?   마을 모양이 말의 허리 같다고 해서 원래는 마요리(馬腰里)였던 것을 사명대사가 지나다가 매화의 꿋꿋한 정기가 감도는 것을 보고, 이 마을 사람들이 매화같이 선량할 것이라 하여 지형과 인심에 걸맞게 매화 매자를 쓰는 것이 합당할 것이라 하여 매요리(梅要里)로 바뀌었다고 한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주덕(酒德)을 칭송하다가 10시 10분경 매요리를 떠났다.                                                                                                                                                                                                                                                                   

 

- 백두대간 길에 사치스러운 행각 - 사치마을을 향해..

 

 

 

 

 

     교회와 폐교를 끼고 한 10분 정도 걸어가면 743번 지방도로가 나온다. 우리가 가야 할 등산로는 백두대간 복원공사로 폐쇄되었다. 할 수 없이 도로를 따라 약 1 Km를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마침 경운기가 한 대 지나가는 데 일행 중 두 명은 얼씨구나 하고 경운기 뒤에 올라탄 채 쾌재를 부른다. 그들은 그야말로 사치마을까지 사치를 누리며 그 공갚음으로 태워주신 노인께 달마가 가져온 홍어와 소주로 대접을 해올렸다. 그 노인장께서도 꽤나 기분이 좋으신 듯했다.                                   

 

   88고속도로 한끝에 매달린 사치재를 지나 11시 20분경에 간단한 점심을 들었다. 라면과 햇반은 기본이요 거기에 묵은 김치와 김부스러기, 홍어, 두릅은 금상첨화였다.   

족히 1시간 정도를 여유있게 보내고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12시 20분 경).                                                                                                                                                                                                                                                      

   중산이 제일 앞장 서 가더니 종내 모습을 대하기가 어렵다. 준족으로 꽤나 빨리 간 것이 아닌가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전화벨이 울리기에 받아보니 길을 잘못 들어 뒤에 있다고 한다. 엄청 빠르다 싶었더니 전혀 엉뚱한 방향에서 일이 전개된 것이다. 앞서 가는 친구들에게 천천히 갈 것을 주문하고 달마와 같이 중산을 기다려 함께 앞 친구들을 따라 갔다. 졸지에 알바를 한 중산을 두고 장난스런 말들이 오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순서일 터였다.                                                                               

 

- 88고속도로를 낀 사치재, 우리(후진)가 도착한 시간은 이 보다 뒤(사진은 포곡이 앞서가며 찍은 것)

 

- 산길을 가다보면 가끔 장애물을 만난다. 자연스레 머리를 숙이며 겸손을 배우게 된다.

 

- 88고속도로가 멀리 내려다 보인다

 

 

 

     
     이러저러한 일들을 겪으며 좌로 휘돌았다 우로 휘감기도 하고, 오르막길을 만나 좀 땀 좀 빼다 내리막길을 만나 숨을 돌리면서 시리봉(해발 777미터)에 이른 것이 2시 반경이었다. 시리봉에서 머잖은 곳에 아막성이 버티고 있었다.  둘레가 633 미터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성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삼국이 정립했던 시대에는 이곳을 중심으로 신라와 백제가 치열하게 전투를 치루었다고 한다.                                                                                                                                                                 

 

    임도를 만나게 되어 다왔나 싶으면 길 건너로 또 소로길이 이어진다. 마침 KBS촬영팀이 무엇을 찍으려는지 그곳에 모여 있다. 마침내 오늘의 종착점인 복성이재에 이른 것은 3시 15분경이었다. 중산과 내가 제일 늦게 앞서간 일행과 합류하였다. 복성이재는 전북 남원군과 장수군을 가르는 경계 지점이다. 지난번 첫 산행은 이곳에서 시작하였기 때문에 다음에는 점프하여 육십령을 가게 될 것이다.식사와 휴식시간을 포함하면 아침 5시부터 약 10시간을 걸은 셈인데 거리로는 약  22 Km정도가 된다.                                                                                                                                                                                                                                                                                                                                                                                                                                                 .                                                                                             
                                 

 

 - 흥부묘가 있다고?

 

- 복성이재에 먼저 도착한 친구들의 여유... (막걸리 실은) 차를 기다리나? 아니면 (후미의) 우리를 기다리나?

 

   운봉에 승용차를 두고 온 규일이는 택시를 타고 먼저 떠났고, 나머지 8명은 민박집 아저씨의 트럭을 타고 함양버스터미널을 향하여 갔다. 일부는 화물칸에 탄 채 남은 홍어를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는 정취를 제대로 느끼기도 하였다. 함양에 도착해서도 슈퍼 앞에 모여 간단히 한잔 하는 것을 잊을 친구들이 아니었다. 차를 타려다 같은 차에 타게 되는 순만이를 우연히 만나기도 하였다. 상경하면서 더러 눈을 붙이기도 하고 심심파적으로 지니고 간 책을 꺼내 읽기도 하는 가운데 이틀 간의 여정이 서서히 마무리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