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者樂山[등산]/백두대간

신백두대간 4-1 : 육십령 - 삿갓재

지평견문 2013. 8. 20. 00:07

  2013년 7월 6일 토요일

 

  이른 아침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역 근처.

  배낭을 둘러맨 사나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잠시 후 승용차 한 대가 스르르 다가와 그들을 싣고 어디론가 떠나갔다.

  양재역 근처에서 또 몇 명이 합승했다. 기사는 아무 말 없이 차를 경부고속도로로 내몰았다. 그러거나말거나 일행들은 자기들만 알아들을 듯한 소리로 뭐라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곤 했다. 기사를 제외하면 모두 11명이나 된다. 그들은 안성휴게소에 내려선 국밥으로 대충 배를 속이는 눈치였다.      
   어느 정도 허기를 달랬는지 그들은 다시 차에 올라탔고, 약속이나 한듯 차는 주르륵 남쪽을 향해 질주해갔다. 11시경 그들이 내려선 곳은 해발 690미터의 육십령이란 곳이었다. 경남 함양과 전북 장수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육십령은 오래전부터 지리산 구간과 덕유산 구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왔다.       
     
          

   - 출발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다. 좌로부터 달마 김성권, 성암 오진탁, 포곡 조병국, 지평 김세봉, 약산 김규일, 중산 황기수, 어윤석, 화산 박찬정, 이문로, 지산 송재혁, 이제만 -

 

   육십령에 대한 전설은 몇 개가 전해온다. 이곳을 넘으려면 60개의 굽이를 돌아 넘어야 한다는 것부터, 높고 험한 고개에 도적이 많이 출몰하여 60명이 함께 넘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설, 함양과 장수에서 각각 60리 길에 해당되어서라는 등등.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재미있는 설화이다. 어쨌든 우리는 출발에 앞서 정기사님의 앞에 포즈를 취하는 의례적인 의식을 치렀다. 그 때가 대략 11시 10분경.

 

   마침내 출발, 다시 대장정의 일부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 여름 더위라 해도 잡목숲을 지나는 까닭에 햇빛은 어느 정도 피해다닐 수 있었다. 언제나처럼 행렬의 맨 뒤에 서 일행을 따랐다. 가다가 예쁜 꽃이라도 발견할라치면 얼른 스마트폰이나 카메라를 꺼내서 셧터를 눌러댄다. 그래야 쓸 만한 사진을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가끔은 괜찮다 싶은 것을 건지기도 한다. 사진을 찍다 보면 어느 새 친구들은 저만치 달아난다. 그러면 다시 부리나케 뒤를 밟아 거리를 좁히기를 누차 하게 된다. 그래도 이것이 후미를 맡았기에 누리는 호사가 아니겠는가?

 

 

 

 

 

 

 

 

 

 

 

 

 

 

 

 

 - 처음 만난 봉우리인 할미봉

 

   가다보면 암릉도 지나고 줄을 잡고 오르거나 내려갈 일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 것은 산행에 있어 어느 정도 긴장감도 주지만 나름대로 재미를 선사하는 게 보통이다. 우리는 12시 20분경에 마침내 첫번째 봉우리를 만난다. 이름은 할미봉이지만 무려 1,026 미터나 되니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모습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상황에서 한 부부가 점심 식사를 하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백두대간을 산행하다 보면 거의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게 다반사다. 
     
     할미봉에서 머잖은 곳에 대포바위 안내판 표지판이 나타났다. 정작 대포바위를 보려면 다른 길로 조금 더 내려가야 하는 데 거기에 시간을 투자할 만큼 여유가 있는 형편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정작 대포바위는 앞으로 지나가서 먼 발치로 바라보게 되었다. 대포바위는 남근석이라고도 하는 데 이런 류의 바위는 산행을 하다보면 종종 발견하게 된다. 다산을 기원했던 민간신앙과 일정한 관계 속에서 남근석이 많이 양산되지 않았나 싶다.

      

- 바쁜 산행 중에도 뭔가 열심히 공부하는 이제만

 

- 후미를 맡다보니 내려가는 계단의 맨 윗쪽에 서게 되었다.

 

- 자 조심, 조심

 

 - 이제 나만 내려가면 된다.

 

       가파른 계단길을 내려설 때 포곡이 먼저 내려가 모두 함께 포즈를 취하게 한다. 후미에 선 내가 제일 위에 서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계단길을 내려서면 다시 험한 암릉이 가로막는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밧줄이 매어져 있다. 스틱은 바위를 타거나 내려설 때 오히려 불편할 경우가 많다. 앞 사람에게 스틱을 전달하고 밧줄에 몸을 의지해 암릉을 내려선다. 줄만 튼튼하면 별 문제가 없지만 바위가 미끄러울 수 있어 항상 조심해야 한다.

 

     내리막길은 언제나처럼 오르막길과 연결되어 있다. 어느 친구들을 내리막길이 길어지면 올라갈 것을 걱정한다. 그럴 때 내가 하는 상투적인 이야기는 이거다. 내려갈 때는 그저 즐기고, 올라갈 때는 내려갈 때를 생각하라고...

 

   산길은 또 하나의 인생길이다. 내려갈 때가 있듯이 올라갈 일이 생기고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다시 내려가게 된다. 오르고 내리기를 번복하는 가운데 어찌 땀인들 나지 않으랴. 그럴 때는 적당한 자리를 잡아 쉬기도 한다. 누가 쫓아올 것도 아니고 구태여 서두를 게 없다. 동창들과 함께 하는 산길이기에 나름대로 융통성도 있고 여유도 있다. 만약 상업적으로 운영하는 산악회를 따라가면 생각할 수 없는 특혜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 시간. 오후 2시 50분경 우리는 준비한 라면과 햇반으로 늦은 점심을 하였다. 이럴 때는 적당히 술 한 잔 정도를 걸쳐두는 것도 좋다. 지나치면 독이 되지만 적당량의 음주는 아름다운 산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데 훌륭한 역할을 하게 된다.
     
     한 시간 정도 점심 시간으로 할애되었다. 점심이 거의 끝나갈 무렵 갑자기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윤석이는 그냥 맞는 것도 괜찮다고 그대로 있었지만 대부분은 부지런히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우비로 몸을 감쌌다. 그러나 비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어쩌면 더위를 식히는 데 도움이 된 측면이 없지 않다고 여길만 하다고나 할까.

    
     

 

 

 - 스틱을 옆에 대기만 해도 내가 바로 접수할 수 있는 서봉

 

    다시 오르막길이 나타나고 올라서니 그게 바로  서봉 (1,492 미터)이었다. 그 때가 약 4시 30분경.  나의 몸을 획으로 삼아 옆에 비껴 서면 그냥 세봉이라고 해도 될 만한 친근감을 던져 주었다. 그러는 순간 1.75미터의 나는 어느 새 1,492미터로 훌쩍 자라게 된다. 서봉은 남덕유산과 마주 보고 있는데 경남 함양과 전북 장수의 경계 지점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장수덕유산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함양 사람들이 조금은 억울해 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너무 여유를 부렸나? 예상시간보다 다소 지체된 것으로 자체 평가되었다. 총무인 포곡이 대피소에 연락을 취한 다음 선두조를 형성하여 먼저 출발하였다. 이제만과 약산이 그 대열에 합류하였다. 역시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5시 10분경 남덕유산(해발 1,507미터) 삼거리를 지나쳤다.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남덕유산을 그냥 지나치기로 하였다. 시간이 다소 지체된 측면도 있고, 가스가 차 전망도 별로 좋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남덕유산은 경남 함양군과 거창군, 그리고 전북 장수군의 경계선상에 있다. 백두대간 길은 대체로 도의 경계를 이루며 구불구불 길게 드리워져 있게 된다. 산자분수령이라고 하듯 산줄기는 각 지역에 흐르는 물길의 발원지로서의 구실도 충실히 하게 되는 데, 남쪽 기슭에 있는 참샘이 진주 남강의 발원이 되고, 육십령이 금강, 삿갓골샘이 낙동강의 지류인 황강의 발원이 된다고 하는 따위가 대개 그런 유이다.

 

     5시 40분경 황점마을 갈림길인 월성재(해발 약 1,200미터)를 지나고 , 삿갓봉 아래를 지날 때는 이미 6시 반이 넘어서고 있었다. 이미 선두조는 한참을 앞서 오늘의 목적지인 삿갓대피소에 도착했을 것이지만 오진탁 교수와 나는 맨 뒤에서 후미를 꿋꿋이 지켰다. 이미 해는 저물어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삿갓재 대피소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7시 반도 넘은 시간이었고, 선두그룹들은 벌써 평상에 자리잡고 거나하게 술 한잔씩을 걸치고 있었다. 저녁과 함께 이루어진 술자리에는 오리고기와 베이컨, 홍어 등 산해진미가 곁들여졌는데 공단직원들도 합류하는 초유의 파티장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잠자리에 들기 전 공단 직원의 안전 산행에 대한 장광설과 안마서비스를 받았다. 잠시 밖을 나와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은 어느새 완전히 개어 있고 수많은 별들의 향연이 베풀어지고 있었다. 은하수까지 볼 수 있을 정도의 장관에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는데 뚜렷한 북두칠성의 모습을 통해 그나마 방향을 가늠할 수 있었다. 사방에선 반딧불이가 번쩍 번쩍거리며 자신의 모습도 기억해달라는 듯 몸부림치는 삿갓재대피소의 밤은 그렇게 사위어갔다.     
     

     오늘 소화한 거리는 대략 14 Km로 8시간 이상을 줄기차게(물론 식사시간 포함) 걸었다.

     

      

 

 

 

 

 

- 삿갓재 대피소에서의 파안대소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