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행복

배운 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앎[온고지신(溫故知新)]

지평견문 2013. 9. 30. 05:41

         ◯ 배운 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앎[온고지신(溫故知新)]

 

    《논어(論語)위정(爲政)편에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가이위사의(可以爲師矣).’라는 말이 나온다. ‘옛 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면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나왔다. 온고지신에 대해서 형병(邢昺)이라는 사람은 옛날에 배워서 얻은 것을 복습하여 잊지 않게 하는 것을 온고(溫故)라 하고, 평소 알지 못하던 바를 배워서 알도록 하는 것이 지신(知新)이라고 하고 있다.

 

    온고지신이란 어떤 의미에서 철저한 역사의식의 다른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왕의 좋은 전통은 잘 보존하여 유지하는 한편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학습하여 받아들일 때 사회가 건전한 발전을 이루게 된다.

 

    역사에서는 시간의 궤적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데 시간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구분할 수 있다면 역사는 과거, 곧 지나온 일들을 대상으로 하게 된다. 그러나 지난 일을 다룬다고 해서 그것이 화석화되어 현재나 미래와 무관한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흔히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는 과거가 단순히 과거 자체에 매몰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역사적 사실은 하나일지 몰라도 그에 대한 해석은 끊임없이 재해석의 과정을 통해 발전되기 때문에 심지어 모든 역사를 현대사라고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만큼 역사에서는 해석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최근 유력한 대선주자의 특정 사안에 대한 역사인식이 도마에 올라 많은 논란을 빚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하겠다. 사람마다 보는 시각에 따라 해석을 달리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를 아무런 근거 없이 자의대로 해석되는 것이 용납된다면 역사의 존재가치는 퇴색하게 되고 말 것이다. 각자의 주관적 견해는 합리적 토론을 통해 객관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통설로서의 역사적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

 

    우리는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지향적으로 화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종종 접하게 된다. 말인즉슨 그럴듯하다. 일부 맞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일정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주장 가운데는 과거에 잘못을 범하였거나 현재 기득권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견해가 농축된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잘못을 덮어두거나 회피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1940년대 해방 공간에서 친일파들이 주로 과거는 과거, 현재는 현재라는 식의 논리 하에 자신들을 합리한 측면이 없지 않았나 싶다. 모처럼 국회에 마련된 반민특위도 특정한 부류의 정치력 확보에 이용되어 제대로 활동을 못하게 되었고, 그 후유증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미래지향적인 것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철저한 과거에 대한 진단과 반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과거는 한낱 지나간 일이라고 대충 얼버무려서 될 일이 아니다. 그 과거의 열매가 현재이고, 현재는 또한 미래의 과거이며 미래 또한 잠정적 과거요 역사가 됨은 불문가지이다.

 

    지금 분명히 잘못된 것으로 알려진 것들마저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는 식으로 피해가는 것은 비겁한 일일 뿐 아니라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도외시하면서 찬란한 미래를 말하는 것은 마치 문을 닫아걸고 들어오라고 하는 것과 같다. 건강한 미래의 설계는 올바른 과거의 반추와 거기에서 얻어지는 교훈들을 아로새길 때 그만큼 잘못을 줄이게 될 것이다.

 

    바람직하건 그렇지 못하건 과거의 역사는 모두 우리가 껴안고 가야할 교훈의 산실이다. 세 사람이 가는데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할 때처럼 좋은 것은 앞으로도 이어서 그대로 지켜갈 것이요, 잘못된 것은 다시 반복하지 않음으로써 그 또한 배움의 대상으로 삼아야 우리는 그만큼 시행착오를 줄이고 알찬 현재를 구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현재의 누적은 곧 또 하나의 역사로 태어나 미래의 씩씩하고 굳건한 역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좋지 않은 일이라고 해서 애써 외면하고 대충 얼버무려서는 똑 같은 과오를 또 다시 범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고 하겠다. 그럴 바엔 구태여 우리가 역사를 힘써 배워야 할 이유가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 참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참담한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런 것조차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지워버린다고 해서 그대로 사라질 상처가 아니다. 과거는 물론 현재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사회 문제를 외면하고 미래의 꿈을 논한다는 것은 한낱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온고지신은 그저 시험이나 보기 위해서 만들어진 고사성어가 아니라 과거라는 누적된 성과를 바탕으로 현재를 지렛대 삼아 미래로 나가는 데 빠져서는 안 될 반드시 필요한 행동 지침이다. 과거를 어떻게 인식하고 현재를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미래의 건강한 발전여부가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는 결코 회피하거나 외면할 일이 아니라 맞닥뜨려 극복해가는 과정임을 추호라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

 

       《건강과 행복201210월호(단국대학교 병원 잡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