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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不見睫(목불견첩) :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눈썹은 보지 못함.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기가 어려움을 비유하는 말이다.

지평견문 2014. 1. 2. 06:30

 

  ◌ 目不見睫(목불견첩) :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눈썹은 보지 못함.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기가 어려움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를 줄여서 목첩(目睫)이라고도 한다.

 

    두 고수가 장기를 둘 때 두 고수보다 하수인 사람이 옆에서 뺨을 맞아가면서도 훈수를 두게 된다. 분명 옆에서 지켜보는 하수는 두 고수보다 수가 한참이나 아래인 사람이지만 장기를 두는 당사자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게 하수에게 더 잘 보일 경우가 허다하다. 어째서 그러한가? 막상 대결 중인 두 고수는 아무래도 본인들이 직접 관련되어 있어 구애되는 바가 있다. 그러다보니 객관적 현실을 제대로 못 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때는 고수도 지켜보는 하수만 못하게 되는 셈이다.

 

    진영 논리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올바른 객관적 현실이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본의 아니게 들으려 하는 것만 들으려 하고, 보려고 하는 것만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 다소 하수지만 제3자의 말을 경청할 때 장애의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여야가 극한 대립만 할 게 아니라 여야의 시각을 떠나 있는 대중의 시각을 바라보면 정말 천명이 어디에 있는 지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나치게 어리거나 노쇠한 경우가 아니고, 지나치게 부하거나 가난한 자가 아니고, 어느 정도 상식적 교양을 갖춘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보다 진실에 근접한 해답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눈에 가장 근접한 눈썹은 오히려 너무 가까워 볼 수 없는 법이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시각에서 균형 감각이 작동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너무 조급하게 하지 말고 두루 두루 전후좌우를 살피고 여러 사람들의 견해를 들은 다음 하나둘 차근차근 하면 무리 없을 일들을 개인 또는 집단의 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잘못 보고 있지는 않은지 이제 좀 살펴보면서 가자. 민주주의는 결과에 앞서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는 근본적 물음을 가지고 접근하면서 투명하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면 누가 시비를 삼을 것인가? 백 마디 장미 빛 말보다 자그마한 실천을 보여줄 때 신뢰는 저절로 생겨나게 된다.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 믿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원인이 있음을 왜 모르는가? 하다못해 아이가 우는 데도 다 이유가 있는 법인데 하물며 이것저것 알만한 국민들이 아우성을 칠 때는 다 그만한 까닭이 있는 것을 어찌 모르는지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그걸 모르면서 정치를 한다, 누구를 섬긴다는 따위의 말을 함부로 할 일이 아니다.

 

    나나 너나 자신의 눈썹을 볼 수 없음을 공유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 우리가 서로 약속한 사실들을 중심으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다 보면 어느 정도 선에서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게 지금 바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라면 좀 미루어두면 언젠가는 다시 해결점이 있을 터인데 무에 그리 급해서 무리수를 써가며 얼굴을 붉히고 그럴 일이던가? 너나 할 것 없이 부족한 우리들이 서로 어울려 살 수 있는 길이 정녕 없단 말인가? 국민 총생산이 아무리 천정부지로 치솟더라도 안녕하지 않은 사람들이 기하급수로 양산된다면 그게 과연 바람직한 국가인가? 부익부 빈익빈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언제까지 피자 판만 키우자고 목소리를 높일 것인가? 어느 정도 균형적 분배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큰 피자 판은 오히려 상호간에 싸움을 부추기게 될 지도 모른다. 이제 분배정의를 우선시하면서 동반성장하는 체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라는 사실에 방점을 찍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