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환향(徒步還鄕) (1)
〇 도보환향(徒步還鄕) (1)
2007년 9월 22일 토요일 흐림(첫째날)
아내가 차려주는 아침밥을 먹고 후암동 집을 나섰다. 6시 10분이었다. 등산 가방은 어제 대략 꾸려놓았기 때문에 간단히 점검하기만 하면 되었다. 후암 종점에 있는 24시 김밥 집에서 점심용 김밥 두 개를 산 다음 해방촌 쪽으로 향하였다.
108계단을 올라가 해방촌 길을 경유하여 이태원동을 거쳐 한남동을 향하였다. 이태원동에는 주로 외국인들이 삼삼오오 몰려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간간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순천향병원을 지나 한남대교에 이르니 벌써 7시 5분이었다. 한때 제3한강교로 불리던 다리라 뜬금없이 어느 가수의 노래가 생각이 났는데 여전히 오늘도 유유히 흘러갔다. 별로 깨끗해보이지는 않았다. 이른 아침임에도 벌써 수상스키를 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생각보다 다리가 긴 듯했다. 건너는데 무려 10여분이나 걸린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다리를 다 건넌 다음 신사동 쪽으로 올라서는 게 문제였다. 건널목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빙빙 돌아 가다보니 쓸데없는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편의점에 들러 캔 커피 한잔을 하고 초콜릿 몇 개를 사서 챙겨 넣었다. 초콜릿은 등산이나 먼 길을 갈 때 요긴하게 쓰인다.
강남역에 도달하니 8시가 되었다. 인환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추석 명절 잘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간단히 답 글을 보내주고 길을 재촉하였다. 8시 20분쯤 양재역에 도착하였다.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알려진 이곳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문턱이라 할 수 있는데 인조가 이괄의 난 때 피난가다 말 위에서 죽을 받아먹어 말죽거리라는 말로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물론 말죽거리 유래에 대해서는 다른 전설도 전해오지만.
양재천에 걸려 있는 영동1교(8시 35분)를 통과하여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트럭터미널을 찾아갔다. 그전에 차를 타고 몇 번 가본 길이지만 막상 걸어서가자니 묻지 않고 제대로 가기가 어려웠다. 트럭터미널에 도착하니 시침은 9시에서 무려 3분이나 지나 있었다. 집에서 출발한지 거의 3시간 가까이 걸려 겨우 청계산 입구에 도착한 것이다.
오늘 중국 반지설산 등정을 떠나는 친구들(임순만, 송봉환, 오진탁, 이성규)에게 전화를 걸어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나누었다. 오진탁교수가 핸드폰이 없어 연락을 할 수 없었는데 마침 그가 봉환이 옆자리에 있어 그와도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청계산 입구까지 오는데 진을 빼다보니 옥녀봉 오르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회복되었다. 9시 45분에 옥녀봉에 이르러 경마장 쪽과 관악산, 서울시내 쪽을 바라보고 잠시 쉰 다음 바로 출발하였다. 매봉을 향하여 열심히 가는데 한가위와 관련하여 한상범 회장의 문자가 날아왔다. 고마운 마음으로 역시 회신을 보냈다.
1,000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 매봉에 도착하니 10시 28분이었다. 다리쉼도 할 겸 해서 거금 1,000원을 주고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들었다. 이수봉 방향을 몰라 우왕좌왕하는 일군의 사람들에게 길을 가르쳐주고 혈읍재를 지나 11쯤 망경대 근처의 한 바위에 올랐다. 멀리 인천의 연안부두가 바라다보였다. 날씨는 흐렸지만 의외로 시야는 멀리까지 미치는 편이었다.
11시 13분 절고개 능선에 올라섰다. 과천 대공원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요충지에 막걸리 장수가 진을 치고 있다. 별 망설임 없이 막걸리 한 잔을 사 들이키며 새로운 기운을 얻는다. 아마 혼자서 술을 먹은 것은 작년 생일에 백운대에서 내려오다 백운산장에서 막걸리 한 대접 먹은 것까지 치면 두 번째가 아닌가 한다.
고려 유신 조윤에 대한 글귀가 담긴 게시판을 그대로 지나쳐 머지않은 곳에 이수봉이 있었다(11시 25분). 이수봉에 도달하기 바로 직전 시호(전시황)에게서 전화가 왔다. 걸어서 고향에 간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응원 차 전화를 한 것이다. 포천으로 낚시를 간 모양인데 또 이렇게 일부러 전화까지 해서 격려해주니 고맙기 그지없었다. 힘이 절로 솟는 듯 했다. 한편으로 설산 원정대에게 전화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겹쳤다.
다시 길을 재촉하여 국사봉(해발 540m, 의왕시)에 이르니 11시 53분이었다. 역시 인천의 연안부두가 눈 안으로 들어왔고, 남산과 북한산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김밥 하나로 간단히 배를 속이고 이번에는 하오고개를 향하여 길을 서둘렀다. 가본 길이지만 혹시나 해서 돌다리를 두드리듯 여러 사람에게 물어 확인하며 내려갔다. 12시 42분 원터 마을 입구에 도착하여 계곡을 찾아들었다. 작년에 형수와 같이 탁족한 바로 그곳에서 이번에는 혼자 등산화와 양말을 벗어부치고 물에 발을 담갔다. 풍덩 발을 당구니 어느새 피로가 얼마간 풀리는 것을 느꼈다. 잠시 탁족을 즐긴 다음 스카프를 물에 적셔 목에 둘렀다.
원터 마을에서 굴다리(서울외곽순환도로? 횡단)를 지나 바라산으로 들어섰다. 1시 8분쯤 천주교공원묘지에 이르렀는데 바라산 정상까지는 4킬로미터 거리였다. 마침 추석 때라 성묘를 온 사람들이 얼마간 눈에 띄었다. 바라산 길은 나무가 우거져 음습한 데다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를 않아 약간은 묘한 기분이 나기도 하는 곳인데 오늘은 그래도 다행히 여러 팀을 만날 수 있어 그런 분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1시 40분쯤 성권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역시 응원하기 위해 일부러 전화를 해온 것이다. 자신도 어머니 계실 때 해보고 싶었던 것이라며 부럽다고 하는 데는 고맙기도 하고 한편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힘이 좀 드는가 싶다고 할 때 걸려오는 친구들의 전화가 큰 힘이 되어 주었음은 물론이다. 혼자 길을 가지만 결코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1시 48분에 도착한 곳은 우담산(해발 450미터)이라고 했다. 바라산까지는 1,600미터가 남았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바로 옆에는 그와 다른 수치로 되어 있는 것도 있어 도대체 신뢰가 가지 않았다. 어쨌든 2킬로미터 안쪽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였다.
2시 5분에 바라산 진입능선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의왕 복골이나 고기리 삼거리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다. 바라산 대신에 백운산 가는 곳으로 표기되어 있었는데 백운산까지는 3,100미터가 된다고 한다.
2시 25분 마침내 바라산에 도착하였다. 보통 산행길은 시속 2킬로를 잡는데 4킬로미터를 1시간 20분 정도에 주파한 것이다. 아마 비교적 길이 순탄해서였던 것 같다. 그러나 바라산 진입능선에서만큼은 그렇게 제법 가파라 힘을 들여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날씨가 다소 흐린데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주어 큰 덕을 보았다. 어찌 에어컨 바람에 대랴. 작년 8월 15일 형수와 더위 때문에 애먹던 생각이 절로 비교가 되었다.
바라산에서는 남은 김밥을 해치웠다. 멀리 북한산과 남산이 시야에 들어왔고 가까이는 백운호수가 입을 쫙 벌리고 있다. 내 뒤에 바로 따라온 젊은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 또한 청계산을 넘어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 가볍게 생각한 나머지 아침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물만 달랑 들고 온 모양이다. 그러니 허기질 것은 뻔한 일. 사람이 먹은 게 없으면 기운이 없게 되고, 기운이 없으면 걷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준비해온 초코파이와 과자를 주었더니 초코파이만 받아들고 과자는 한사코 사양한다. 분당 쪽으로 가는 길을 묻기에 지도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약 20여분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출발하였다. 한가위 추석을 잘 쇠라는 문자가 또 하나 들어왔다. 현철이라고 되어 있다. 현철이라? 이런, 내가 아는 현철이는 둘이나 된다. 손현철, 노현철. 대관절 누구일까? 손인지 발인지, 예스인지 노인지 그게 구분이 갈 리 없었지만 하여간 나를 아는 현철일테니 무슨 상관이랴. 역시 고맙다는 회답을 하곤 나중에 누군가 확인해볼 요량으로 편안하게 생각하기로 하였다.
이제는 백운산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설정되었다. 고분재라는 곳은 백운호수로 가는 길과 고기동으로 내려가는 샛길과 만나는 지점이다. 백운산까지의 거리는 1,700미터. 지나온 산을 뒤로 밀어내며 허위허위 앞으로 나가 백운산(해발 567미터)에 도착하니 3시 반이었다. 거기에도 막걸리를 파는 아저씨 한 분이 계셨다. 한 잔을 더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내 그만 두기로 하였다. 나는 내쳐 걸었으니 그런 것을 못 느꼈는데 그 분이 어느 분과 통화하는 양을 보니 춥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산행하기에는 기가 막히게 좋은 날씨였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시원한 바람은 그 무엇보다도 큰 응원 세력이었던 것이다.
억새밭(3시 58분)을 지났다. 광교산 시루봉까지는 이제 1킬로미터가 조금 넘는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4시 10분 노루목을 지나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받았다. 4시 20분에 마침내 오늘 가야 할 마지막 봉우리인 시루봉(582미터)에 도달하였다. 사과 하나를 껍질째 덥석 베어 물으며 서울 쪽을 바라보니 청계산이 비교적 높게 보였고 희끄무레하게 누에 형상처럼 보이는 것은 짐작컨대 잠두봉, 곧 남산일 것이었다. 이번에는 연섭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예의 한가위 잘 보내라는 문자였고, 역시 고맙다는 문자로 대응하였다.
4시 35분부터 하산을 시작하였다. 방향은 수지 고기동쪽이었다. 이제 남은 거리는 2,700미터였다. 하산길이니 훨씬 마음이 가벼웠다. 산중에 웬 송덕비가 있어 잠시 둘러보았다. 다시 문자가 하나 들어오는데 이번에는 성격이 달랐다. 학교에서 온 것인데 도서관 사서장 김모분이 모친상을 당하였다는 내용이었다. 조금 후 같은 내용의 문자가 정정된 사실을 전해왔다.
한 100미터 정도를 남겨 놓고 이제 다 내려왔다 싶었는데 웬걸 정작 가고자 하던 수지 성당으로 가려면 3,4킬로미터를 더 가야한다고 한다. 한 시간 이상 더 걸릴 것이라는 것이다. 막상 다 왔으려니 생각하다 그렇게 되고 보니 어이가 없기도 하였지만 어쩌랴. 다시 남은 음식과 물로 간단히 요기를 한 다음 재차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여러 번을 묻고 묻는 가운데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그러나 준비해 간 헤드랜턴을 사용할 정도는 아니었다.
6시 25분 수지성당이라고 여긴 곳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수지성당은 보이지 않고 지구촌교회가 나타났다. 수지성당은 근처 다른 곳에 있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수지까지 내려왔으니 이제 잠잘 곳을 마련해야 했다. 사람들에게 죽전 길을 물어보니 어디어디로 가라고 하며 차타는 것까지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차탈 생각이야 애당초 없었으므로 걸어가면 어느 정도 걸릴까를 알아보니 약 45분가량 걸릴 것이라 한다.
가르쳐준 길을 찾는데 이마트가 눈에 띄었다. 아내의 말로 처조카가 이마트 옆의 아파트에 산다고 하던 말이 얼핏 떠올랐다. 전화를 해보니 처형댁에 있다고 한다. 그에게 죽전 근처 찜질방 같은 것이 있는가를 물어보니 대강 어디쯤 있을 거라고 가르쳐 주더니 대뜸 자기 집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처형댁이라야 근처이니 금방 집에 갈 수 있다고 하며 들어와서 저녁을 하고 자고 가라고 한다. 처음에 폐가 될까 하여 극구 사양했으나 강잉히 그렇게 하기를 권하는 데야 끝까지 버티기도 어려웠다. 할 수 없다 싶어 이마트에 들러 휴지 한 꾸러미를 사들고 들어가니 7시 10분이었다. 후암동집을 출발한 지 실로 13시간 만이었다.
샤워를 하고 조카의 옷가지를 빌려 입었다. 조카며느님이 해주는 저녁을 염치없이 받아먹으며 하룻밤을 머무르게 되었다. 당초 계획과 약간 달라지기는 했지만 수지에서의 잠자리가 은근히 걱정이었는데 의외로 쉬운데서 해답이 나왔던 것이다. 뒤늦게 문자 하나가 또 들어왔다. 유도회에서 공부 한 송병하군의 추석 인사였다. 내내 혼자 걸었지만 언제나 이들이 함께 있어 든든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