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생각/페이스북의 글

2014년 8월 23일 오전 05:28

지평견문 2014. 8. 23. 05:29

< 유민이가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 >

아빠!
아빠의 딸 유민이에요.
평소에도 아빠가 저를 사랑하는 것을 알았지만 이번처럼 아빠의 사랑을 뼈저리게 느낀 적은 없을 거예요.

그러나
아빠!
지금은 저에 대한 아빠의 지나치실 정도의 사랑이 좀 부담스럽기도 해요.
저를 사랑하셔서 그러시는 줄은 알지만 아빠께서 극도로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을 지경이에요.

저는 본의 아니게 아빠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렸지만 이 이상 더 아빠를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처음 아빠가 단식을 시작하실 때만 해도 아빠의 사랑을 재차 확인하는 것 같아 고맙게 여겼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오히려 그것은 제게 새로운 죄책감을 들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요.

이제 아빠 자신을 위해서, 아니 사랑하는 딸 유민이를 위해서 제발 건강을 돌보세요. 아빠가 저를 위하신다고 하면서 제 마음이 더욱 괴로워진다면 과연 그것이 저를 위해서 바람직한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보세요. 제가 더 이상 아빠에게 불효를 끼치게 하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아빠가 저로 인해 더욱 생각하기조차 힘든 지경에 빠지게 될 때 엄마나 가족들은 또 어떻겠어요. 그러니 제가 아빠가 절 사랑하신다고 하시는 일을 마냥 좋아만 할 수 없잖아요.

저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아빠가 진정으로 하셔야 할 것은 바로 아빠 자신을 위하는 길이 아닌가 싶어요.

누구에게 들으니 그러더군요. 어떤 제자가 공자에게 효(孝)에 대해서 물으니 ‘부모는 자식들이 병이 들까 걱정한다.’고 답변했다고 해요. 저는 어려서 잘 모르지만 부모님께서 저희들에게 바라듯 저희들도 부모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바로 그런 점이 아닐까 싶어요.

사랑하는 아빠!
저를 지독하게도 사랑하시는 아빠!
제발 아빠를 위해, 가족을 위해, 저를 위해 건강에 유념해주셨으면 해요.
저를 위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아빠의 건강이라는 것 잊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아빠가 건강하셔야 앞으로 계속 아빠가 주장하시는 그러한 것도 바라볼 수 있지 않겠어요.

한말의 의병장인 면암 최익현 선생은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많은 선비들이 우국충정으로 자살하는 것을 보고, 당신은 오히려 적들과 싸우려면 기운이 있어야 한다고 하시며, 평소보다도 더 많은 식사를 하셨다고 해요. 저는 아빠가 이번만큼은 아빠가 사랑해마지 않는 이 예쁜 딸의 마음을 이해해주시고 면암 선생 같은 방법을 따라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아빠!
세상에는 저 유민이 말고, 수많은 유민이들이 있어요.
이제 아빠는 그들 모두의 아빠가 되어주셔서 다시는 저와 같은 일들을 겪지 않도록 하는 데 힘써 주셨으면 해요. 그렇게 하시려면 하루 빨리 건강을 회복하시는 게 급선무가 아니겠어요. 그러면 저도 그러한 것을 멀리서나마 지켜보면서 늘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며 기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빠!
거듭 말씀드리건대 제발 이제 기운 차리시고 어떻게 하는 게 아빠의 딸 유민이를 위하는 길인지 재고해주셨으면 해요. 아빠의 딸이어서 행복했던 유민이가 아빠에게 간곡히 간구하고 또 간구하면서 간단히 줄일 게요.

- 사랑하는 아빠의 딸 유민이가

* 유민이의 아빠보다 나이 많은 제가 딸의 입장이 되어 글을 써 보려니 어색하기 그지없지만 아마 따님의 생각은 대략 그렇지 않을까 싶고, 실지로 따님을 위한 방법이 어떤 것인지 진중하게 생각해보셨으면 해서 감히 이렇게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하루 빨리 건강을 회복하시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