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곽람우(南郭濫竽)라는 말이 있다. 일을 맡아 할 만한 실력도 없으면서 외람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의 유래는 《한비자(韓非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내용인즉 이러하다.
일찍이 맹자도 만나본 일이 있는 제(齊)나라 선왕(宣王)은 피리 연주를 듣기를 좋아했다. 그것도 한 300명이나 되는 대 인원을 채워서 하는 대단한 합주였다. 이들에게는 물론 충분한 대가가 주어졌다. 당시 남곽처사(南郭處士)란 자가 있었는데 그는 그 그룹에 들기를 자원했다. 제 선왕의 입장에서는 매우 반가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월은 흘러 선왕이 죽고 그의 아들 민왕(湣王)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 또한 선왕을 닮아 피리 소리 듣기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다만 그는 그 아버지와 달리 한 명 한 명 연주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자 남곽처사는 어디론가 냅다 도망 가버리고 말았다.
지난 주 토요일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친구 딸 결혼식이 있었다. 산을 같이 다니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신부 아버지와 함께 리아킴의 <위대한 약속>이라는 노래로 축가를 불렀다. 모두 12명. 나 또한 우여곡절 끝에 그 중에 끼어들었다. 나야말로 또 다른 남곽처사가 아닐 수 없었다. 만약 독창을 한다고 하면 절대 그 자리에는 참여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나야말로 거의 립싱크 수준에서 겨우 자리 메꿈을 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남곽처사여, 이제 그만 돌아오시라. 그대는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다. 지금 세상에도 그대와 같은 사람들은 부지기수일 것이니 너무 자책하지 마시라. 2천여 년 이상 도망 다녔으면 이제 충분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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