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산대사의 기상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은 임진왜란 때 승병(僧兵)을 거느리고 구국의 일선에 섰던 선승(禪僧)의 종장이다. 의병장으로 유명한 사명대사는 바로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이다. 서산대사가 금강산 향로봉에 올라가 지었다는 시에 그의 기개가 잘 드러나 있다.
만국도성여의질(萬國都城如蟻垤) : 만국의 도성은 개미의 집인 듯하고
천가호걸약혜계(千家豪傑若醯鷄) : 천가의 호걸은 초파리와 같구나.
일창명월청허침(一窓明月淸虛枕) : 창문 밖 밝은 달은 나(청허)의 베개 비추는데
무한송풍운부제(無限松風韻不齊) : 끝없는 솔바람 소리가 고르지 못하누나.
도성에 즐비한 고대광실도 그의 눈엔 한갓 개미집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고, 호걸들이라야 겨우 초파리 모습이나 진배없었다. 그저 그에게는 창문을 사이로 휘영청 밝아오는 달을 누워 가까이 할 수 있으면 족한 것이요, 소나무를 뒤흔들며 가까이서 혹은 먼 곳에서 지나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면 딱히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였기에 나이 80에 입적할 때조차 이렇게 읊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팔십년전거시아(八十年前渠是我) : 팔십 년 전에는 네가 곧 나였는데
팔십년후아시거(八十年後我是渠) : 팔십 년 후에는 내가 곧 너로구나.
* 용두팔 게시판에 실었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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