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하루 (다음 메일에서 받은 좋은 글)

큰애야... 나는 너를 믿는다

지평견문 2022. 4. 10. 00:19

< 큰애야... 나는 너를 믿는다 >

 

떨리는 마음으로 네 손을 잡고

결혼식장 들어서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손자가 생겼다니

정말 세월은 화살보다 빠르구나.

 

엄마 없는 결혼식이라

신부인 네가 더 걱정스럽고 애가 타서 잠 못 이뤘을 것이다.

네 손에 들려 있던 화사한 부케가

너의 마음처럼 바르르 떨리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결혼식 끝나고도 이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한참을 그곳에 남아 서성거렸단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느새 붉어진 네 눈자위가 그만 아비의 울음보를 터뜨렸지.

화장실에서 한참을 울다 당숙의 손에 이끌려

겨우겨우 나왔단다.

 

큰애야.

편지 한 장 쓰지 않고 지내다가 손자가 생겼다는

기쁜 소식을 받고 이렇게 펜을 들었다.

 

마음이야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지만

시어른이 계시니 전화하기도 불편하고

아비 마음 전하기도 쉽지 않다.

친정엄마가 있었으면 내 속이 이리 어렵진 않았을 텐데

못난 아비가 한없이 한심스럽다.

 

읍내 장에 나가 참깨를 팔아서 금은방에 들렀다.

손주 녀석 은수저 한 벌을 고르고 그릇도 한 벌 사 왔다.

건강하게 잘 크라는 외할아버지 마음까지

한 바구니 담아 백일쯤에 전 해주려 하는구나.

이다음 손주 녀석이 크면 외할아버지 사랑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겠지

 

아이가 건강하다니 무엇보다 큰 다행이구나.

산후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모양인데

이 세상에서 부모 되는 일은 그리 수월하지 않다고 들었다.

행여라도 네 엄마가 생각나서 그런 거라면

아비 편지 받고 곧 잊어라.

귀여운 여린 것 봐서라도

네가 건강한 마음을 먹어야 하는 거 알고 있겠지?

 

슬프고 안타까운 네 속을 아비는 안다.

너그럽게 마음 가다듬고 좋은 생각만 하여라.

앞으로 어렵고 힘든 일 생기더라도

슬기롭게 극복해 가리라 믿고 있겠다.

 

시어른들 잘 받들고

남편 잘 섬기고

아이하고 건강하게 지내기를 날마다 기도한단다.

아비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

노인정에 나가서 친구도 만나고

쉬엄쉬엄 농사일도 하고 있으니

내 걱정은 말고 어서 몸 추슬러 잘 살아라.

 

큰애야.

나는 너를 믿는다. 곱게 살 거라.

 

- 내 인생의 편지 한 장 '아버지가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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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도 힘들지 않고,

보고 싶어도 보고 싶지 않다고 하는

이 땅의 모든 부모님은 가장 착한 거짓말쟁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