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리’의 한자식 표기에 대한 단상
‘거리’의 한자식 표현은 어떻게 해야 맞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갖게 된 것은 종로2가 사거리 정거장 표시에 대한 한자식표기를 본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분명 ‘종로이가사거리(鐘路二街四去里)’라고 되어 있었다. ‘이가(二街)’의 ‘가(街)’는 그 자체가 ‘거리 가’자 이니 의심의 여지가 없었는데 문제는 ‘사거리(四去里)’의 ‘거리(去里)’가 왠지 낯설었다.
그런데 결혼식장에 다녀오느라 천안에 갔다가 우연히 천안삼거리에 대한 한자식 표기를 또 볼 수 있었다. 거기에 삼거리는 ‘삼거리(三巨里)’로 표기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거리(去里)’와 ‘거리(巨里)’ 중 어느 게 맞는 표현일까? 사전을 찾아보아도 그런 한자적 표현 방식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 음을 그대로 한자를 빌어다 쓴 것으로 밖에는 별다른 생각을 갖기가 어려웠다. 조선시대도 아니건만 그것은 분명 이두[吏讀]식 표현이라고 밖에 달리 생각하기 어려웠다.
한자로 ‘거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거리(距離)’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간격이랄까 공간적 개념으로 쓰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1가, 2가 하는 식의 ‘거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식으로 거리를 뜻하는 한자적 표기는 그나마 ‘가도(街道)’가 맞지 않나 싶다. 왜냐하면 네이버 사전에 확인해 본 결과 ‘街道 [jiēdào]’는 ‘거리. 가두. 길거리. 가로. 대로. 큰길’ 등을 뜻하는 말로 풀이되고 있어 우리가 말하는 1가, 2가 따위를 말하는 거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에 외에 한자를 곁들여 표기했다면 이는 분명 외국인, 특히 중국인을 그 대상으로 하여 표기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거리’라는 말을 쓸 때 그에 부합하는 ‘가도(街道)’로 쓰면 몰라도 ‘거리(去里)’라든가 ‘거리(巨里)’로 쓰는 것은 왠지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안내 표시인가 하는 의문을 먼저 갖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괜히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표기할 것이 아니라 그에 걸 맞는 단어를 잘 선정해야 할 것임은 물론이려니와 또한 통일성을 기해서 헷갈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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