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심(詩心)/한시(漢詩)

대주(對酒) : 백거이(白居易)

지평견문 2013. 4. 6. 07:34

               〇 대주(對酒) : 백거이(白居易)

 

    蝸牛角上爭何事(와우각상쟁하사) : 달팽이 뿔 위에서 무슨 일로 다툴 손가.

    石火光中寄此身(석화광중기차신) : 부싯돌 불빛에 이 몸을 맡겼거늘.

    隨富隨貧且歡樂(수부수빈차환락) : 부하거나 가난한대로 그저 즐기리로다.

    不開口笑是癡人(불개구소시치인) : 입을 벌려 웃지 못하면 이게 곧 바보라네.

 

    중국 서안(西安)의 화청궁에서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장한몽(長恨夢)이라는 뮤지컬을 본 적이 있다. 여산에 달을 걸어놓고 화청궁과 연못을 무대로 살려 공중과 지상, 물 등을 가리지 않고 펼치는 장엄함에 그저 혀를 내둘렀던 생각이 든다. 그 장한몽의 작가가 바로 백거이이다.

 

    백거이의 비파행 또한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 그이고 보니 술을 읊어도 격조가 있다.

28자의 짤막한 시구에 어쩌면 저토록 절절히 인생을 담을 수 있을까?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는 형상을 장자에게서 빌려왔다 해도 이는 동산에 올라가 노나라가 작다고 했던 공자와 빼닮았다. 어디든 서울 근교 산에 올라 시내를 내려다 보라. 거기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티격태격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래야 그저 성냥갑이다.

 

    인생이라야 고작 부싯돌로 불을 붙이는 정도의 짧은 순간이다. 인생칠십고래희에서 좀 벗어나 백세의 수명을 바라본다 해도 길게 보면 그저 순간이고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존재들이 핵이네 뭐네 하면서 아옹다옹 싸우는 것도 부질없기는 매 한가지이다.

 

    좀 잘 산다고 해서 별것 없고 좀 못 산다고 해서 주눅들 것이 없다. 결국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데는 너나할 것 없이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주어진 형편에 따라 적당히 즐겁게 사는 게 절실하다.

 

    그러니 쓸데없이 얼굴이나 찡그릴 일이 아니다. 일부러라도 웃다 보면 그만큼 웃고 살 일이 많아질 것이다. 그런 웃음은 주변과 더불어 같이 웃을 때 더욱 가치 있는 웃음으로 변신하게 될 것이다. 바보라서 실실 웃는 것이 아니요, 웃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필경 바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