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者樂山[등산]/백두대간

신백두대간 4-2 : 삿갓재 - 빼재(신풍령)

지평견문 2013. 9. 9. 06:25

    아직 어둠이 짙게 깔려 있는 새벽 4시, 우리 모두가 기상하였다.

    급히 끓여낸 미역국에 햇반을 말아 간단히 조반을 마쳤다. 서두른다고 했어도 결국 출발 시간은 5시 25분경이나 되어야 가능했다.

    일찍이 퇴계 이황 선생은 '독서는 유산과 같다[讀書如遊山]'과 한 바 있다. 삿갓재대피소에 걸려 있는 현판에 '유산여독서(遊山如讀書)'라고 써있는 글귀는

    아마도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어쨌든 책을 읽듯 우리는 산길을 갈 것이고, 산길을 가면서 독서의 의미를 곰씹을 것이다.

    출발에 앞서 우리는 삿갓재 대피소 앞에서 간단히 기념 사진을 찍었다. 
     
     

 

 

 

 - 제법 의지가 결연한 모습들

 

 

     
     삿갓재 대피소가 처음은 아니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드는 것은 어째서일까? 지난 번에는 눈보라가 휘날렸는 데 이번에는 가스가 온통 사방을 에워싸 시야를 가렸다. 여전히 나는 대열의 맨 뒷자리에서 친구들의 꽁무니를 따랐다.
     
    모두들 헤드랜턴을 켜고 앞사람이 지나간 자리를 되짚어 나가면서 기나긴 여정에 올랐다. 때로 나뭇잎에서 심심찮게 물방울들이 옷깃을 스며들기도 하고 아차하는 순간 돌부리가 채이기도 하면서 구불구불 행렬은 이어졌다. 앞서 간 친구들은 풀섶에 묻어 있던 물기들을 툭툭 건드리며 때론 거미줄에 얼굴도 내주어야 할 것이지만 그래도 뒤쪽에 있는 나는 좀 나은 편이다.

 

    우리의 대오는 두세명, 혹은 너댓이 모였다가는 흩어지고 흩어졌다 만나기를 반복하면서 산길을 때로는 부지런히 때로는 천천히 이어갔다. 종종 멋진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면 잠시 멈추어 서서 핸드폰 셧터를 눌러댔다. 그러자면 그 사이 벌써 친구들의 행렬은 저만치 앞서 가곤 했다.

 

   긴 나무 계단을 오르다 잠시 발을 멈추어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 새 구름이 성큼 다가와 산야를 가렸다가 보여주고 또 가렸다가 지나가기를 수 차례 반복하였다. 역동적인 대자연의 연출이 장관이다 보니 아무리 바쁘다한들 어찌 그냥 지나칠 만한 용기가 내게 있단 말인가?. 

 

    아무리 길이 먼 것 같아도 가는 만큼 좁혀지는 게 길이다. 어느 사이 우리의 발걸음은 우리를 무룡산 앞에 대령시겼다. 해발 1,492미터의 무룡산이 우리에게 몸을 내준 것은 6시 15분경이었다. 기념 촬영을 하는데 오진탁 교수가 슬몃 '무'자를 가린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 산을 온전히 우리의 산으로 잠시 느껴본다. 우리야말로 용산인이 아니던가. 설마하니 누가 이를 또 손룡산이나 수룡산으로 읽지는 않겠지? 
     
     

 

 

 

 

     무룡산을 떠나  돌탑봉을 지나 동엽령(약 1,270 미터, 07시 55분)에 이르렀다.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갈 길은 먼데 비가 내리니 이는 일모도원(日暮道遠)도 아니고 우중도원(雨中道遠)이라고나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잠시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오늘 산행을 과연 온전히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였다. 결과는 일단 갈림길에서 다시 한번 논의해보자는 것이었다. 결국은 다시 논의해보자는 논의를 한 셈이다. 
     
     간식을 곁들인 잠깐의 회의를 마친 다음 다시 동엽령을 출발하였다. 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다시 산길을 재촉했다. 사실 비가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처음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비를 우려해 산행 자체를 연기할 생각까지 하였던 터지만 오히려 비가 내려 덥지 않아 더 좋은 측면도 없지 않았다. 당장 등산화 속으로 스며드는 빗물과 꺼져 가는 배의 시장기가 닥쳐와도 못 견딜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9시 5분경 우리는 백암봉(1,503 미터)에 올라섰다. 일명 송계삼거리.  곧장 북쪽으로 가면 중봉을 거쳐 덕유산의 정상인 향적봉(1,614 미터)에 이르는 길이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오른쪽으로 휘어져 있다. 지산과 성암은 무릎이 좋지않아 향적봉으로 가기로 하고 나머지 9명만이 백두대간 길로 들어서며 아름다운 이별을 하였다. 우리의 오늘 목적지인 빼재(신풍령)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 백암봉에서 길을 나누기 전

 

 - 이리 가면 백암봉, 저리 가면 신풍령

 

 - 다른 일행은 보이지 않고 우리만이 뚜벅뚜벅 산길을 걸었다.

 

    많은 비는 아니었지만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나뭇잎에 먼저 떨어져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뭇잎이 빗물을 주루룩 쏟아내기도 하고, 때론 빗물이 투둑투둑 간헐적으로 방울져 내리기도 하면서 정겹게 몸을 부벼댔다. 같이 가는 동료들을 뒤에서 바라보면서 이런 소중한 친구들이 없었던들 어찌 이런 특유의 낭만을 구가할 수 있었을 것인가 하며 가만히 뿌듯한 감정에 젖어보기도 하였다.

 

   백암봉에서 물을 부어 둔 전투식량을 이제 꺼내 먹어도 좋을 만큼 시간이 지났다. 어느 정도 허기도 달래야 할만큼 배도 제법 고파왔다. 적당한 자리만 있으면 어디에서건 앉아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뿔싸, 이게 웬일. 식사 하기에 적당한 곳을 발견했을 때 일행 중 몇 명은 벌써 한참을 앞서 나갔다. 할 수 없이 선두로 가 있는 그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뒤를 좇는 가엾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몇몇은 노래를 부르며 이를 즐거움으로 승화해내고 있었다. 이후에도 점심 먹기에 좋은 자리가 한두 군데 더 발견이 되었지만 똑같은 이유로 효용가치를 별로 갖지를 못했다. 

 

   귀봉(약 1,390 미터)을 지나 겨우 횡경재(싸리등재, 약 1,350 미터)에 가서야 선두 주자인 이제만, 김규일, 어윤석 등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도 결국 먹지 않고는 안될 절실함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 때가 10시 20분경이었다. 평소 같으면 이른 점심이었지만 오늘 아침은 새벽 일찍 먹었던 탓에 지금으로서는 다소 늦은 점심이었다. 시장이 반찬임을 만끽하면서 비빔밥을 거침없이 해치우고 언제 그랬냐는 듯 커피 한잔까지 여유있게 마셨다. 누군가 제만이가 호가 없으니 하나 지어주라고 하기에 그의 이름에 '공경 제(悌)'가 들어간 것을 염두에 두고 '공경할 경(敬)'자를 써서 '경산(敬山)'이라고 하여 즉석 호를 지어주었다. 어떤 친구들은 '가벼울 경(輕)'자 '경산'이라고 놀려대지만 그거야 앞으로 본인이 할 탓이라 할 수 있다.
     
     11시 10분경 우리는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 횡경재를 출발하였다. 선두조(이제만, 김규일, 어윤석)가 앞서 나간 상태에서, 우리는 11시 50분경 못봉(지봉, 1,343 미터)에 도달하였다. 이곳부터는 다시 달마와 포곡이 앞서 나갔고, 중산과 이문로, 화산, 그리고 나까지 네 명이 후진을 형성하며 천천히 일행의 뒤를 따랐다. 사실 이 구간의 길은 지난 번에 한번 지나가 본 길로 제법 지루한 길이었다. 그나마 비로 인해 덥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던 셈이다. 
     
    달암재(월음령, 약 1,080 미터)를 찍고 대봉(1,263 미터)을 오를 즈음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져 우리가 가는 길은 금새 조그만 도랑이 되어 물이 흐를 정도였다. 갈미봉(1,210 미터)을 넘고도 작은 봉우리들이 줄지어 앞을 가로 막았다. 바닥은 질퍽이고 나뭇가지는 가끔 이마를 위협해 오지만 그래도 이 또한 산행의 일미임에 틀림없는 터라 어렵게 여기기 보다 즐기고자 하였다.

     
     오후 3시 10분경 우리는 마침내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빼재(신풍령, 약 930 미터)에 들어섰다. 먼저 도착한 선두조와 백암봉에서 헤어진 지산과 성암이 우리를 환영하며 맞이했다. 하산주를 하기에는 신풍령 정자가 제격이었다. 오늘 소화한 거리가 약 19 Km였고 소요된 시간은 9시간 반 정도였다. 어제 걸은 거리와 합산하면 약 33 Km가 된다. 
     
     이번 산행에 참여한 동기들은 화산  박찬정(회장), 포곡 조병국(총무), 지산 송재혁(고문), 달마 김성권(고문), 약산  김규일(부회장), 성암 오진탁(감사), 경산 이제만, 어윤석, 이문로(검객), 중산 황기수(대장), 그리고 지평이라 부르는 나까지 총 11명이었다.
          

 - 후진 그룹의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