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목이 짧은 양말이 하나 있다. 신고 있다 보면 양말이 말려들어가 발이 들어나기도 하여 종종 길을 가다가도 걷어 올리는
경우가 있다. 오늘도 그 양말을 신으며 마음 한편으로 개운치 않았다. 하지만 온전한 양말을 그대로 버리기에는 일말의 죄의식
이 남아 있어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신고 있었다. 완전히 계륵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오늘도 여지없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양말이 또 말려내려 갔다. 약간 신경질적으로 잡아당기는 데 그만 죽 찢어지고 말았다.
평소 같으면 하루 종일 신고 지내며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에 노심초사했을 터였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한
편으로 이상한 반가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 이유는 사실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아, 이제 버려도 되겠구나. 나 나름대로 버릴
만한 명분을 얻은 셈이다. 옛날 같으면 반드시 꿰매어 신었겠지만 그래도 요즈음은 꼭 그럴 필요까지 없는 터라 어차피 잘 되었
다는 요상한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요즈음 정국이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대형사고가 터져 국회에서 그 사건을 다루는데 그 관련자들 중
단 한 명도 증인을 세우지도 못했다고 한다. 단지 그것뿐만이 아니라 그와 유사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도처에 산적해 있는 게 사
실이다. 뭔가 크나큰 일대 변혁이 일어나야 할 것 같은 데 그게 어디 생각처럼 잘 바뀌는 것이던가? 어쩌면 그러한 것들은 내 뚫
어진 양말의 존재만큼도 못하지 않나 싶은 생각에 괜히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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