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한비자(韓非子)》 내저설(內儲說)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세 사람 정도가 이야기를 하게 되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내게 된다고 한다.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한 대신이 조(趙)나라에 인질로 가는 태자를 수행할 당시 위나라 왕과의 대화에서 비롯된 성어라 한다.
문제의 그 대신이 위나라 왕에게 ‘어떤 한 사람이 임금에게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겠느냐?’고 하자 위왕은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답했
다고 한다. 대신이 다시 말하기를, 또 다른 사람이 와서 그 이야기를 똑같이 하게 되면 어떠하겠느냐고 하는 데도 왕은 역시 믿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세 번째 사람이 와서 같은 이야기를 하면 어떠하겠느냐는 대신의 물음에 이번에는 임금도 믿을 수밖에 없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 대신은 자신이 조나라에 가 있을 때 위나라에서 자기에 대해서도 분명 그런 상황이 있을까 염려하여 왕에게 미리 다짐을 해둔 셈이다. 이를 인정한
왕의 말을 분명 듣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가 귀국하였을 때 우려했던 사실이 발생해 그는 결국 조정에 복귀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아는 것과 실
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던 모양이다.
이를 두고 세 사람이 말하면 시장에 나타나지 않은 호랑이도 마치 나타난 것처럼 되고 만다는 의미에서 삼인성호라고 하게 된 것이다. 가짜 뉴스도 자꾸
듣다 보면 결국 쇠뇌가 되어 마치 그것이 사실처럼 인식될 수 있다. 그래서 그것에 의해 어떤 결과가 이루어진 다음 제대로 된 사실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원상태로 회복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조금 유는 다르겠지만 증자가 살인했다는 말도 이와 유사한 점이 있다. 증자는 공자를 계승한 사람이자 효경을 지었다고도 알려진 유가의 대표적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사람을 죽였다는 얼토당토않은 내용이다.
어떤 사람이 증자(증삼)의 어머니에게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고 고하였다. 증자의 어머니는 평소 증자의 품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믿지 않고
코웃음을 치며 베 짜는 일을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잠시 후에 또 다른 사람이 찾아와 그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고하였지만 여전히 믿지 않고 하던 일
을 계속하였다. 그런데 얼마 뒤 또 다른 사람이 와서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는 증자의 어머니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두려움을 느껴 베틀
의 북을 던지고 담을 넘어 도망쳤다고 한다. 한두 사람이 아니고 이렇듯 여러 사람이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해대면 심지어 자식을 굴뚝같이 믿던 어머니마
저 의심을 품게 되고 마는 법이다. 나중에야 그것이 아들과 동명이인이 살인한 것으로 알려지기는 했지만 사람들의 입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사실 여부
를 떠나서 말이다.
세종 때 사군과 육진을 개척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육진의 경우 세종이 김종서에게 개척을 맡겼다. 김종서가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돌아왔을
때 세종이 김종서에게 궤짝인가 상자인가(?)를 내보였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김종서를 다각적으로 폄훼한 문서들로 가득 찼다고 한다. 그 내용대로라
면 도저히 김종서에게 육진 개척의 임무를 맡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이에 흔들리지 않고 김종서를 끝까지 믿고 바람막이 역할을 해줌으로써
김종서가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지켜 주었던 것이다.
세종은 김종서에게 ‘내가 있고 장군이 없다거나 장군이 있고 내가 없었다면 육진 개척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라는 내용의 이야기를 하였다고 전해
진다. 사람을 믿지 못하면 아예 쓰지 말 것이고 믿는다면 그가 소신 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확고하게 지켜주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길가에 집을 지을
때 사람들의 간섭이 많아 집을 짓기 어려운 것처럼 어떤 일을 제 때에 제대로 실행시키기 어렵게 마련이다.
요즈음이라고 이런 일이 없을까? 과연 시중에 떠도는 말들이 모두 사실로 믿을 수 있는 것들일까? 시중에 난무하는 어떤 사안들은 팩트도 확인되지 않은 채
떠도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에서 제 각각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와중에 어떤 사람은
마녀가 되기도 하고 회복 불능의 만신창이가 되기도 한다. 내로남불을 목청껏 주장하는 사람들이라 해서 거기에서 모두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그보
다 더한 경우를 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상황이 연출될 때 우리는 그저 쓴웃음을 지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증자의 다음 말은 유의미하다.
“네게서 나간 것은 네게 돌아가리라.” 어찌 말 한 마디라 해서 함부로 할 것인가? 자기가 한 말이 부메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
증자의 스승인 공자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과연 나는, 우리는 무엇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조심스럽게 작금의 사태에 대해 나의 생각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그저 내가 인식하는 선상에서 나름대로의 희망 사항이라면 검찰 개혁, 공수처 설치, 패스트
트랙 관련 범법자들에 대한 법과 원칙에 의한 올바른 처리 등이 이번 기회에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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