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심(詩心)/한국의 시

마침내 여기 이르지 않곤 끝나지 않을 줄 이미 알았다.

지평견문 2021. 4. 20. 06:16

< 마침내 여기 이르지 않곤 끝나지 않을 줄 이미 알았다 >
  
                                  - 조지훈 
   
그것은 홍수였다.
골목마다 거리마다 터져 나오는 함성
"백성을 암흑 속으로 몰아넣은 이 불의한 권력을 타도하라."
  
홍수라도 그것은 탁류가 아니었다.
백성의 양심과 순정의 밑바닥에서
솟아오른 푸른 샘물이었다
  
아아 그것은 파도였다.
동대문에서 종로로 세종로에서 서대문으로 역류하는 이 격류는
실상은 민심의 바른 물길이었다.
쓰레기를 구더기에 내어버린 자 그 죄악이 구덩이로 몰아붙이는
  
그것은 피눈물의 꽃파도였다.
보았는가 너희는
남대문에서 대한문으로 세종로로 경무대로 넘쳐흐르는 그 파도를
이것은 의거
이것은 혁명
이것은 안으로 안으로만 닫았던 민족혼의 분노였다.
온 장안에 출렁이는 웃다가 외치다가 울다가 쓰러지다가
끝내 흩어지지 않은
  
이 피로 물들인 외침이여
아 시민들이여 온 민족의 이름으로
일어선 자여
  
그것은 해일이었다.
바위를 물어뜯고 왈칵 넘치는
불퇴전의 의지였다. 고귀한 핏 값이었다.
무너지는 아성
도망가는 역적
  
너희들은 백성의 이름으로 처단하지 않고는
두지 않으리라 의분이여 저주여
법은 살아 있다. 백성의 손에서
정의가 이기는 것을 눈앞에 본 것은
우리 평생 처음이 아니냐 아아 눈물겨운 것
  
불의한 권력에 붙어
백성의 목을 조른 자들아
불의한 폭력에 추세하여
그 권위를 과장하던 자들아
너희 피 묻은 더러운 손을
이 거룩한 희생자에 대지 말라
  
누구를 위해 피 흘렸느냐
민족을 위해서
무엇을 위하여 죽어갔느냐
끝내 지켜보리라.
  
빛을 불러놓고 먼저 간 넋들이여
이 전열에 부상하여 신음하는 벗에게
너희 죄 지은 자의 더러운 피를 수혈하지 말라
이대로 깨끗이 죽어갈지언정
썩은 피를 그 몸에 받고 살아나진 않으리라
  
양심의 눈물만이
불순한 피를 정화할 수 있느니라
죄지은 자여 사흘 밤 사흘 낮을
통곡하지 않고는 말하지 말라
  
그것은 진리였다.
그저 터졌을 뿐
터지지 않을 수 없었을 뿐
애국이란 이름조차 차라리 붙이기 송구스러운
이 빛나는 파도여
해일이여
    
* 1960년 4월 27일 경향신문 석간에 발표되었던 시이다.

'시심(詩心) > 한국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월의 들꽃  (0) 2021.06.16
아카시아를 위한 노래  (0) 2021.05.10
  (0) 2021.04.10
진달래꽃  (0) 2021.03.30
봄날은 간다  (0) 2021.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