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이여 오라 >
- 박인걸
눈보라 휘몰아치는 산야에는
자유를 잃은 나무들이 두려워 떨고
그토록 역동적이던 생명체들은
빙저호안에 깊이 잠겨 있다.
흐드러지게 피던 고운 꽃송이들은
계절의 윤회에 소멸하였다 치더라도
늦가을 마지막 잎새까지 잔인하게 목을 친
칼바람의 폭력은 용서할 수 없다.
시답잖게 몇 차례 내려준 눈으로
돌아선 나를 돌이키려 하지 말라.
내 마음은 이미 스칸디나비아반도가 되었고
툰드라의 순록 떼가 더러 오갈 뿐이다.
봄이여 어서 오라.
나는 지긋지긋한 동한(冬寒)을 증오한다.
고로쇠나무에 단물이 오르고
복수초 노란 꽃송이가 얼음을 헤집으며
노랑나비가 서투른 날갯짓으로
아지랑이 사이를 쏘다니는 봄을 맞고 싶다.
종달새는 보리밭 고랑을 날고
버들강아지 목화송이처럼 피어나면
생명의 기운이 거친 대지 위에 약동하는
연록색 새 봄을 맞이하고 싶다.
봄이여 지체 말고 달려오라.
내 눈에 고인 눈물을 꽃잎으로 닦아주고
얼어버린 내 손을 입김으로 녹여주라.
흐트러진 내 마음을 주워 담고
잃어버린 꿈을 되찾아 벌판을 달리고 싶다.
치미는 새싹처럼 일어서서
그림 같은 세상을 만나보고만 싶다.
봄이여 내 옆으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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