〇 연산군의 언론 기피증
흥청망청 이라는 말이 연산군으로 말미암아 생겨날 정도로 연산군은 10여 년 왕위를 누리는 동안 포학한 행위를 많이 자행하였다. 그러한 연산군 자신도 두려워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남들의 그에 대한 평판이었다. 그는 그가 하는 일에 대해 사람들이 비난할 것을 염려한 나머지 대소 신료(臣僚)에게 모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힌 패를 차고 다니게 하였다.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 입은 재앙의 문이요,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 :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폐구심장설(閉口深藏舌) :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간직하면
안신처처뢰(安身處處牢) : 몸의 안전은 어느 곳에서나 보장되리라.“
다시 말해 조야를 막론하고 모두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것이다. 자기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든 참견하면 그냥 두지 않겠다는 위협이다. 환관 김처선(金處善)이 바른 말로 간하다 다리를 끊기고 혀를 잘리는 봉변을 당했으니 허언(虛言)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누구나 연산군 앞에서는 그의 말을 어기기 어려울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향유하였다.
그러나 나는 새도 떨어뜨리듯 하던 연산군의 그 권세도 하루아침에 성희안, 박원종 등의 반정 군에 의해 종식을 고하였다. 그는 임금 자리에서 쫓겨나 강화도 교동에서 쓸쓸히 지내다 생을 마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다 지금은 방학동 한 쪽에 왕자 군(君)의 대우에 해당하는 좁은 묘역을 차지했을 뿐이다. 연산군은 그토록 다른 사람의 입을 막으려 애썼지만 결국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옥죄는 결말로 마감되는데 이르렀을 뿐이다. 언론은 막는다고 막히는 것이 아니다. 일시적 효과는 얻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지 않음을 연산군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이동을 통해 북한산을 등정하기에 앞서 한 정거장 쯤 전에 있는 연산군의 묘소를 한 번쯤 들려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의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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