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생각/정의(正義 )

누구나 살고자 하는 것은 인지상정

지평견문 2013. 4. 3. 05:28

                 〇 누구나 살고자 하는 것은 인지상정

 

    이천(伊川)의 한 백성은 하루에 세 가지 부역[役事]이 겹쳐 (관아에서) 나와 독촉을 몹시 급하게 하므로 그 아내에게 이르기를, ‘내 한 몸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에 관의 부역[官役]이 이와 같아서 그 형세를 당할 수가 없지만, 만일 한번 죽으면 당신은 편안할 것이다.’라고 하고 즉시 그 아내로 하여금 술을 가져오게 하여 마시고 크게 취한 후에 목을 매어 죽었다고 하니 이 말을 듣고 비참함을 이길 수 없었다. 인정이 누구나 죽기를 싫어하고 살기를 좋아하는 데 심지어 죽음을 감내하면서 돌아다보지 않으니 민생의 괴로움이 여기에서 더욱 슬프다 하겠다.

                                        - 오희문, 《쇄미록(鎖尾錄)》정유재란(丁酉再亂)시 12월 11일 일기 -

 

    중간에 소강상태가 있었다고 하지만 왜가 발호하여 발발한 임진왜란은 정유재란까지 합하여 조선에 무려 7년간의 전화(戰禍)를 겪게 했다. 이 과정에 수많은 민초들이 무수히 희생되었다. 왜적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거나 피란 중에 굶어죽기도 했고, 전염병이 창궐하여 이에 희생되기도 하였다. 거기에 지원군으로 들어온 명나라 군사에 의한 횡포도 적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전쟁의 여파로 민생이 도탄에 빠져 사람끼리 서로 잡아먹는 인상식(人相食)의 참상까지 보고되는 실정이었다.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휼해야 할 정부에서마저 그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몰았으니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국가며 정부였던가? 작자의 말마따나 살기를 도모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건만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리는 백성들의 참상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평상시에 복락을 누리던 정부 고위 관리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도망하기에 바빴고 그 뒷감당은 죄 없는 백성들이 겪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한낱 임진왜란 때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래왔던 것이다. 과거를 무시하고 미래만을 이야기하려고 할 때 우리는 오늘날 또 그런 과오를 범하면서 미래에는 한낱 과거로 치부해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역사 없는 미래는 뿌리 없는 나무나 근원 없는 물과 같다. 과거에 매몰되어서도 곤란하지만 결코 잊어서도 안 된다. 그래야만 똑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