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생각/정의(正義 )

호랑이를 누가 잡나?

지평견문 2013. 5. 31. 05:24

                ○ 호랑이를 누가 잡나?

 

    조선 선조 연간에 범이 많아 사람과 가축을 잡아먹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고 한다. 조정에서는 경기 좌우도(경기도가 좌도와 우도로 나뉜 적이 있음)에 두 대장을 파견하여 범을 잡게 하였지만 소란만 피웠을 뿐 별무효과였고 단지 광주 목사(廣州牧使) 이관(李瓘)만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10여 마리의 범을 잡았다. 당시 팔도에서 잡아 올린 것이 100마리가 되어 그나마 호환(虎患)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성호(星湖)가 살던 시대에 이르러 다시 호환이 극심해졌지만 관아에서는 잡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형편이었다고 한다. 애꿎은 사람들만 불쌍하게 인명을 잃을 뿐 하니라 마을에서 도둑을 지키는 개들마저 거의 사라져가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재신(宰臣)의 농장 노예가 호환을 당한 후에야 비로소 경포수(京砲手)를 파견하여 범을 잡게 했지만 민폐를 끼칠 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조정에서는 생각다 못해 현상금을 주기로 하고 범을 잡게 하니 시골에서 몇 사람이 응모하여 범을 잡은 수효가 제법 많아졌다. 이에 산골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계속 몰려와 조총과 창을 사용해 잇달아 범을 잡게 되었다. 그 후에 범을 잡은 수효는 많은 데 비해 상금이 줄어들게 되자 범이 다시 기승을 부렸음에도 범을 잡는 데 힘쓰는 자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조정에서는 법으로 정하여 여러 고을에 명령하여 범을 잡게 하고 범을 잡지 못하면 대신 속포(贖布)를 바치도록 했는데 경사(京司)에서는 그 속포를 받는 것을 이롭게 생각하여 범을 잡으라는 명령을 늦추게 되어 범은 더욱 번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쩌다 백성들이 범을 잡으면 호랑이 가죽은 관청에서 빼앗고 상금은 수고에 걸맞지 않을 정도의 쥐꼬리만큼 주니 구태여 목숨을 내걸고 범을 잡으려 하는 사람들이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호의 말에 의하면 만약 조정에서 백성들에게 신의를 보여 백성들의 마음을 격동시킬 정도로 포상을 한다면 장차 범의 머리를 움켜잡고 범의 수염을 뽑는 자가 나올 것이라며, 그 한 가지만 보아도 백 가지 일을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애당초 호환을 없애려는 근본은 잊어버리고 속포를 받아 챙기는 재미(곁가지)에 신경을 쓰다 보니 결국 호랑이를 잡는 일이 소홀해져 그 해는 고스란히 민초에게 돌아갔던 것이다.

 

    지금이라고 왜 안 그렇겠는가? 호랑이가 모습을 바꾸었을 뿐 지금도 그러한 일은 적잖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믿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당장의 효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무너지면 그 대가는 상상 이상이 될 수도 있음을 위정자들은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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