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생각/정의(正義 )

나라의 보배를 잃었다

지평견문 2013. 6. 11. 05:39

                〇 나라의 보배를 잃었다

 

    고려 고종(高宗) 때 왕해(王諧)가 경상도 안찰사(按察使)로 나가서 권선징악에 힘써 도내가 모두 두려워하며 복종하였다. 당시 최이(崔怡)의 아들인 중 만종(萬宗)과 만전(萬全)이 쌀 50여 만 석을 축적하고 백성들에게 꾸어주고 돈놀이를 하며 수하의 중들을 각처에 보내 혹독하게 부채를 거두어들였다. 이에 백성들은 소유하고 있던 재산을 몽땅 털어주다시피 하고 때로는 세금마저 내지 못하는 실정에 이르렀다.

 

    그러자 왕해가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백성들이 세금을 바치기 전에 개인 빚을 먼저 독촉하는 자는 처벌하라.”

 

    이후 만종과 만전의 무리들이 감히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였고, 백성들도 안정적으로 제때에 세금을 낼 수 있었다.

 

    그가 진주 부사(晉州副使)가 되니 아전들은 그를 두려워한 반면 백성들은 그를 존경해마지 않았다. 그가 동도 유수(東都留守)로 전임하게 되자 진주 백성들이 울면서 그의 유임을 청하는 한편 조정에도 하소연하여 그를 1년만이라도 더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여 유임하기도 하였다.

 

    정직하고 청백한 데다 백성을 괴롭히는 일을 절대로 하지 않았던 그는 아깝게도 젊은 나이인 33세에 타계하였다. 그의 부음을 접한 사람들은 놀라며

 

    “우리나라의 큰 보배를 잃었다.”

 

고 하며 탄식하였다고 한다.

 

    불과 며칠 전 우리는 국보 1호(숭례문)를 너무나도 어이없게 순식간에 잃었다.

 

    (* 2008년 2월 13일 용두팔 홈페이지 게시판에 게재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