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섯 가지 복[오복(五福)]
《서경(書經)》 주서(周書) 홍범(洪範)편에 오복(五福)에 대한 언급이 나와 있다. 첫 번째는 수(壽)이고, 두 번째는 부(富), 세 번째는 강녕(康寧), 네 번째는 유호덕(攸好德), 끝으로 다섯 번째는 고종명(考終命)으로 되어 있다.
오복에 대한 주석에는 사람은 수(壽)가 있은 뒤에 여러 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오래 사는 것을 맨 앞에 내세웠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무리 똑똑해도 수를 누리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본 것이다. 조선시대 5대 임금인 문종(文宗)이나 12대 임금인 인종(仁宗)이 나름대로 훌륭한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고 하지만 일찍 타계하는 바람에 재위 기간이 짧아 끝내 큰 공적을 이루지 못한 것 따위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세종(世宗)이나 숙종(肅宗) ․ 영조(英祖) ․ 정조(正祖)처럼 두드러진 공적을 남긴 임금들이 대부분 오래 동안 왕위를 누린 것과 쉽게 대비가 된다. 물론 10수년 이상 통치를 하면서도 폭군 소리를 듣는 사람들에 대하여는 구태여 거론한 필요가 없을 것이다.
두 번째 부(富)에 대해서는 늠록(廩祿)이 있는 것이라 하였는데 지금 식 표현으로 하자면 일정한 직업을 통해 봉급이나 수입이 있는 것을 말하지 않나 싶다. 꼭 갑부여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맹자에서는 일정한 직업을 가진 것을 항산(恒産)이라고 했는데 그래야 사람들은 일정한 마음, 바로 항심(恒心)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적당한 부란 건강이나 일상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하겠다.
세 번째 강녕(康寧)은 글자 그대로 편안한 것이니, 곧 환란이 없는 것을 이른다고 한다. 오래 살고 부유하게 사는 것도 필요하지만 걱정거리가 늘 상존한다면 그것도 행복하다 할 수는 없겠다. 맹자가 군자삼락(君子三樂) 중 부모가 함께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을 첫째로 꼽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가족 중에 누가 아프거나 걱정거리가 있으면 자연 집안 분위기 자체가 우울해지기 십상이다. 자연적으로 닥치는 불행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상당 부분은 건전한 생활과 노력에 의해서 편안해질 수 있는 만큼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하는 마음 자세가 필요할 성싶다.
네 번째 유호덕(攸好德)은 덕을 좋아한다는 것인데, 주석에서는 이를 도(道)를 즐기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덕을 베풀며 살면 그 또한 즐거운 일이니 가히 도를 즐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공자도 덕이 있는 자는 반드시 이웃이 있어 외롭지 않다고 하지 않았나 싶다. 세상을 살다보면 불가피하게 남에게 도움을 받게 되지만 남을 도울 수 있다면 더욱 복될 것이다. 남에게 행복감을 안겨주는 사람은 본인이 또 그에 상응하는 복을 누릴 것임은 묻지 않아도 알 일이다.
다섯 번째로 든 고종명(考終命)은 수를 누리고 올바른 명으로 죽는 것이라 하여 정상적인 죽음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찍이 맹자가 죄 따위를 범하여 죽게 되는 것을 정명(正命 : 바른 명)이 아니라고 했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잘 살기도 어렵지만 잘 죽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제 때에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요즈음 웰빙 못지않게 웰다잉의 중요성이 거론되는 것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통속편(通俗編)》에는 《서경》에서 말하는 오복과 달리 유호덕과 고종명 대신에 귀(貴)와 자손중다(子孫衆多)로 되어 있어 다소 견해를 달리 하고 있다. 대를 잇고 존귀하기를 바라던 의식이 다분히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옛 서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여겨졌는지 모르지만 요즈음은 일부러 아이들을 하나나 둘 밖에 낳지 않는 세상이고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서경의 오복만을 가지고 본다면 수를 누리기 위해서는 건전한 생활과 지속적인 운동을 통해 어느 정도 천명은 누릴 수 있을 테니 고종명과 관련하여 도움이 될 것이다. 부와 관련해서는 《명심보감》에도 보이지만 근검절약하면 작은 부자는 될 수 있을 터이고, 편안함은 네 번째의 것과 관련하여 주변을 배려하고 덕을 베풀고 살면 어느 정도 유유자적한 삶을 누리지 않을까싶다. 그러고 보면 오복도 결국은 그냥 주어진다기보다 나름대로 노력을 통해서 획득할 수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반드시 고원(高遠)한 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자그마한 실천의 누적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믿어도 좋을 것이다.
《건강과 행복》 2012년 8월호(단국대학교 병원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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