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5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 김재진 갑자기 모든 것 낮설어질 때 느닷없이 눈썹에 눈물 하나 매달릴 때 올 사람 없어도 문 밖에 나가 막차의 기적소리 들으며 심란해질 때 모든 것 내려놓고 길 나서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위를 걸어가도 젖지 않는 滿月(만월)같이 어디에도 매이지 말고 벗어나라. 벗어난다는 건 조그만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 것 남겨진 흔적 또한 상처가 되지 않는 것 예리한 추억이 흉기 같은 시간 속을 고요하고 담담하게 걸어가는 것 때로는 용서할 수 없는 일들 가슴에 베어올 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위를 스쳐가는 滿月같이 모든 것 내려놓고 길 떠나라.

바람의 얼굴

- 유창섭 짙푸른 숲 흔들며 지나는 바람의 얼굴을 보았는가 가장 낮은 잎새 하나 붙들고 낮은 소리로 속삭이는 바람의 얼굴을 보았는가 아직도 먼 길 지나온 모든 길 굽이마다 가슴에서 물결치고 바람의 소리 아직도 잠재울 수 없는 이야기 데불고 지나는 바람의 얼굴 조용히 앉아 있을 때조차도 그저 가만히 놔두지 않는 바람의 얼굴, 그 짓궂은 얼굴을 흠칫 보았다 나와는 꼭 반대로 생겨먹은, 내 생각과는 늘 다른 바람의 얼굴을 흘낏 보았다 가슴속에 살며 똑같이 나이를 먹는 바람의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