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심(詩心)/한국의 시

오월에

지평견문 2022. 5. 11. 23:43

< 오월에 >

 

      - 나태주

 

1.

찰랑찰랑

애기 손바닥을 흔드는

미루나무 속잎 속에

초집 한 채가 갇혔다.

 

하이얀 탱자꽃 내음에

초집 한 채가

또 갇혔다.

 

들머리밭엔

노오란 배추꽃

바람.

 

햇살남매 모여 노는

초지붕 그 아랜

작은 나의 방.

 

2.

치렁치렁

보릿고랑에 바람 흘러간다.

내 작은 마음 흘러간다.

 

길슴한 보리모개 사이로

보얗게 목이 팬 그리움.

부질없이 화사한 고전의 의상.

 

웃으며 네가 웃으며

나래 저어 올 것만 같은 날에.

머리칼이라도 조금 날릴 것 같은 날에.

 

3.

푸른 언덕이 뱉아놓은 흰구름덩이.

흰구름덩이 속으로 다이빙해 들어가는

새끼제비의 비행연습.

네 생각하다 잠들었다, 오후.

문득 시게풀꽃 내음에 흩어지는

나의 꿈.

 

4.

누군지 모를 이 기다리고 있을까 싶어

언덕에 나와 휘파람 불면

눈썹까지 그득히 고여오는 한낮의 바다

글썽이며 눈물 글썽이며 따라나서고

금은의 햇살을 실어나르는 조각배,

바람만 잡아 돌아온다.

바람만 잡아 돌아온다.

 

5.

바람에 머리칼 날리는

자작나무의 귀밑볼은

희다.

 

바람에 스커트 자락 날리는

자작나무의 속살은

눈부시다.

 

바람에 풀어헤친

자작나무의 흰 가슴은

날아갈 듯 부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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