〇 아! 애석하구나. 말하지나 말지.
선조(宣祖) 때 이후백(李後白)이 이조판서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는 공론을 숭상하고 청탁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비록 친구라 하더라도 자주 드나드는 것을 몹시 언짢게 여겼다.
하루는 친척이 찾아와서 벼슬자리를 얻었으면 하는 뜻을 내비쳤는데, 이후백이 안색이 변하여 한 책자를 보여 주
면서 말하기를,
“내가 그대의 이름을 기록하여 장차 벼슬자리에 임명하려고 하였는데, 지금 그대가 구하니, 구해서 얻는다면 공정
한 방법이 아니다. 애석하구나, 그대가 만약 말하지 않았다면 벼슬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자 그 사람이 부끄러워하면서 물러갔다.
이후백은 하나의 관직을 제수할 때 마다 반드시 해당자의 인물됨을 두루 물었고, 만약 합당하지 않은 사람을 잘못 제
수하면 그 때마다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나라 일을 그르쳤다.”
고 말하곤 하였다고 한다. 고위 공직자들의 청문회 현장을 지켜보며 그들을 임용하는 자들이 이후백의 반만 따라가도
좋으련만 하는 생각이 듦은 어째서일까?
* 이 내용은《역사탐험》14(월간중앙 2004년 7월호 별책부록, 77쪽) <고전의 지혜>란에 한 부분으로 게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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