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생각/정의(正義 )

대장부에게 드리운 그늘

지평견문 2012. 12. 30. 09:00

                   〇 대장부에게 드리운 그늘

 

     신숙주가 일본으로 사신을 다녀올 때의 일이다. 마침 폭풍을 만나게 되니 여러 사람들이 모두 당황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는데 그만은 태연자약한 체 한다는 말이

 

    “대장부가 마땅히 사방에 유람하여 가슴 속 회포를 풀어헤쳐야 할 것이다. 지금 큰 물결을 건너서 해 뜨는 나라[일본]를 보았으니 장관이라 하겠다. 만약 이 바람을 타고 금릉(金陵 : 지금 중국의 南京)에 닿게 되어 산하(山河) 풍경의 거룩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또한 하나의 장쾌한 일이다.”

 

라고 하였다. 당시 왜적에게 포로가 되었던 백성들을 쇄환하여 돌아오는 중이었는데 배 안에 임산부가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기를,

 

“임산부는 예로부터 뱃길에 크게 꺼리는 바이니 마땅히 바다 속에 던져서 액막이를 해야 하겠습니다.”

 

라 하니, 신숙주는 다음과 같이 대꾸하였다.

 

    “사람을 죽여서 살기를 구하는 것은 덕(德)에 상서롭지 못한 일이다.”

 

하고는 힘써 말렸는데, 잠시 후에 바람이 잦아들었다고 한다.

 

    아깝다. 신숙주여! 그렇듯 대장부의 기개가 있었건만 어쩌자고 세종의 부탁을 저버리고 수양과 한편이 되어 사육신과 척을 졌던가? 확실치는 않지만 세간에는 잘 변하기로 유명한 숙주나물이 바로 신숙주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속설이 전한다. 여러 면에서 재주가 뛰어나고 나라에 공을 세운 바도 적지 않건만 그만 의리를 한번 저버리는 바람에 두고두고 세인의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