〇 우리 집 아이는 아직 멀었거늘
정갑손(鄭甲孫 : ?∼1451)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좌참찬(左參贊)에까지 이른 인물이다. 그는 청백리(淸白吏)에 뽑힐 만큼 성품이 청직(淸直)하고 엄준하기로 유명하였다. 심지어 그의 자제들조차 사사로운 일로 그에게 간청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일찍이 함길도(咸吉道 : 함경도의 다른 이름)의 관찰사로 있을 적에 임금의 부름을 받고 상경하였다가 돌아가다 방문(榜文 : 과거 합격자 발표문)이 나왔기에 보니 그의 아들 오(烏)도 합격자 명단에 들어 있었다. 그러자 그는 수염을 빳빳이 세우고 성을 내며
“늙은 놈이 감히 내게 여우처럼 아첨을 하려는가? 우리 집 아이 오(烏)는 학업이 아직 정밀하지 못하거늘 어찌 요행이 임금을 속인단 말이냐.”
하고 시관(試官 : 시험관)을 꾸짖고는 마침내 아들의 이름을 지워버리고 시관을 내쫓았다.
온갖 부정을 자행하면서까지 어떻게든 합격이나 출세를 하려고 광분하는 요즈음의 세태로 볼 때 과연 그의 태도는 단연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춘추시대의 석작(石碏)이 자기 자식을 죽여가면서 까지 국가에 진충보국하였다고 하더니 조선에서는 정갑손에게서 다소나마 그런 면모라도 볼 수 있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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