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생각/정의(正義 )

가볍게 부는 산들바람

지평견문 2013. 2. 4. 05:28

                         ○ 가볍게 부는 산들바람

 

    어제 같으면 봄바람이라도 다소 거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래도 끝내 봄기운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은 겨울을 다시 기억해내기엔 이미 화신(花信 : 꽃소식)이 들리는 차원이 아니라 이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진전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꼭 봄바람이 아니라고 해도 가볍게 다가와 볼을 간질이는 바람은 언제나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풍불명조(風不鳴條). 산들바람이 가볍게 불어서 나뭇가지에서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상쾌하기 그지없지만 그렇다고 나뭇가지를 함부로 뒤흔들지도 않으니 소리가 날 리가 없다. 옛 사람들은 이를 어진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어 천하가 크게 다스려짐을 나타내는 자연현상의 하나로 보았다. 그것이 한 단계 고양되어 사회가 안정되어 세상일이 태평함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이게 되었다.

 

    요즈음 정계의 소식을 접하면 왠지 모르게 시끄럽기 그지없다. 잘 모르지만 매우 세찬 바람이 나뭇가지는 물론이고 나무뿌리 채 흔드는 듯 잡음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다분히 윤색된 측면이 농후하지만 태평성대로 일컬어지는 요순시대에는 누가 임금인지 조차 모르는 것을 이상적으로 여겼다. 그런데 지금의 세태는 어떠한가? 정계나 연예계나 할 것 없이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데 마치 온 생명을 내걸은 듯 보인다. 심한 경우 스캔들을 내서라도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 애쓰는 모습들은 보는 이들을 안쓰럽게 한다. 그러니 자연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는지.

 

    이제 제발 입에 발린 말들로 국민들을 농락하는 일은 그만두었으면 한다. 내가 아는 한 입으로 하는 말은 참된 말이 아니다. 몸으로 하는 말이야말로 정직하고 믿을 수 있는 말이다. 유창한 입놀림보다 우리는 어눌하며 성실한 몸짓 언어를 바라고 있다. 요란하지 않으면서 살며시 다가와 이마의 땀을 식혀줄 그런 산들바람을 맞고 싶어 하는 소박한 심정을 또 다시 저버리지 않기를 내심 기대해본다.

 

                         (* 2008년 3월 26일 용두팔 홈페이지 게시판에 게재한 글)

'지평생각 > 정의(正義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자의 뜬 구름  (0) 2013.02.06
몸과 따로 노는 말의 성찬   (0) 2013.02.05
안민인국(安民益國)  (0) 2013.02.03
도간(陶侃)의 어머니 담씨(湛氏)   (0) 2013.02.02
혼자서는 어렵다   (0) 2013.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