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자도 모르는 수령
조선 태종(太宗) 때 당진 감무(唐津監務) 임을생(任乙生)에 대하여 어떤 신하가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가 수령의 직책을 맡기에 부적합하다는 것인데 내용인즉 이렇다.
그가 임을생에게 칠최목(七最目)을 써보라고 하니 ‘전야벽(田野闢)’의 ‘벽(闢)’은 ‘벽(碧)’으로 썼고, ‘호구증(戶口增)’의 ‘증(增)’을 ‘증(憎)’으로 썼으며, ‘사송간(詞訟簡)’의 ‘간(簡)’을 ‘간(諫)’으로 썼다는 것이다. 이러한 글자도 분변하지 못하는 데 그가 수령직을 과연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칠최목(七最目)’은 곧 ‘수령칠사(守令七事)’라고 하는 것으로서 수령이 임명되어 임지에 부임할 때 주지시키는 수령으로써 힘써야 할 7가지 내용이다. 수령칠사는 곧 농상성(農桑盛), 호구증(戶口增), 학교흥(學校興), 군정수(軍政修), 부역균(賦役均), 사송간(詞訟簡), 간활식(奸猾息)의 일곱 가지이다. 지금 식으로 풀어서 말하면 곧 뽕나무 심기를 장려하고, 호구(인구)를 증가시키며, 학교를 일으키고, 군정(軍政) 업무를 잘 수행하며, 부역을 고르게 하고, 재판을 간결하게 하며, 간사하고 교활한 것을 막는 일을 이른다. 수령은 그 지방에서 임금을 대신하여 행정은 물론 군사관계, 재판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책임을 지므로 이러한 임무가 부과된 것이다.
지금은 얼마 전부터 지방 자치화가 실현되어 선거를 통해 시장이나 군수를 뽑고 있는 형편이니 그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런데 옛적 수령에 해당되는 지방의 수장, 곧 시장이나 군수들 중 상당수가 부적격자로서 민폐를 끼치는 사례가 많이 보고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선공후사를 기본적으로 해야 하건만 자신의 이권 때문에 그런 자리를 탐하는 자들이 적지 않은 것 같으니 한심스러운 일이다. 그런 잘못된 관행을 막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함은 물론이려니와 우리의 공기(公器)를 잘 지켜내는 민심의 고양도 아울러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탐학한 수령은 글자를 모르는 수령보다 그 해악이 더 클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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