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지난 번에 백두대간 산행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 이제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숙명이 되어 몇 년에 걸친 장정을 때로는 숙제처럼, 때로는 설레면서 묵묵히 대간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덕 있는 자가 이웃이 있듯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그래서 이미 시작한 일을 우리는 서로 격려하며 그 길고 긴 길을 이어갈 것이다.
이번이 그 두번 째이다. 산불방지기간에 묶여 지리산 구간이 뒤로 물렸을 뿐 사실상 이곳이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때는 2013년 5월 3일 밤이 이슥한 동대문 거리에 일군의 무리들이 배낭을 둘러맨 채 수군거리며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이라는 다소 긴 역명은 그 이름도 비스무레한 동대문 역이 또 있어 곧잘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아니나 다를까? 그것을 구태여 입증이라도 하듯 친구 하나가 동대문역에서 헤매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길 잃은 친구가 부랴부랴 얼굴을 들어낼 무렵 25인승 차가 미끄러지듯 스르르 다가와 거침없이 입을 벌린다. 약속이나 하듯 우리는 조금도 망설임없이 그 차안으로 빨려들어갔다. 기사는 정씨 성을 가진 여성 분이었다.
동대문을 출발한 차는 한남동을 거쳐 양재로 진입했다. 울산에서 올라온 규일이와의 통화가 원활하지 못해 잠시 멈칫거렸던 차는 우여곡절 끝에 그가 합류하자마자 서울을 빠져나갔다. 이제 기사를 빼면 일행은 13명(청량리 출발 4명, 동대문 출발 7명, 양재 출발 2명)이 되었다. 더러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열심인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일부는 잠시나마 억지로라도 눈을 붙여보고자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우리가 함양 휴게소에 도착한 것은 다음 날 1시 40분경이었다. 고산이 함양에서 합류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어찌 지리산이라 해서 다를 리가 있겠는가? 우리는 적당히 배를 채워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으로 어묵 우동과 충무김밥 등으로 간단히 야식이란 의식을 치뤘다.
산행의 들머리인 경남 산청의 중산리에 도착한 것은 3시쯤이었다. 그런데 정작 입산은 4시부터 가능하다고 하니 무려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포곡 총무가 준비한 전투식량을 비롯해 몇 가지 물품들을 나누어갖고 대충산행 준비를 마쳤다. 3시 45분경 입산이 시작되었다. 그나마 공원측이 편의를 제공해준 셈이었다.
- 출발하기에 앞서 깃발을 세우고 모두 함께 기념 사진을 촬영 : 기사님이 수고 -
- 작년 백두산을 동행한 중산과 함께
- 총무로 늘 수고가 많은 포곡과 함께, 1974년 고교시절 1학년 때 같은 반..
야간 산행이라 모두의 이마에는 광부처럼 헤드랜턴을 비끄러 맸다. 계곡을 왼쪽으로 낀 채 우리는 오르막길을 한발 한발 내딛으며 오르기 시작했다. 여전히 내몫은 후미다. 동편 하늘에 자그마한 달이 고개를 내민 채 계속 뒤를 밟아왔다. 5시 10분경 망바위를 지날 때쯤되자 어둠의 조각들이 하나둘 걷혀 나갔다. 연신 뒤좇던 달이 언제 몸을 숨겼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렇게 여명은 해와 달을 합친 밝음[明]으로 대체되었고, 길을 밝혀주던 헤드랜턴은 이제 거치장스러운 장치에 지나지 않았다. 조금 전의 공은 알 바 없다는 듯 주인을 야속해 할 사이도 없이 랜턴은 숨을 죽인 채 배낭 구석 어디론가 구겨져들어갔다.
- 첫 번째 만난 로타리 대피소
5시 45분경 로터리 대피소가 눈에 들어왔다. 내겐 대피소가 해우소로 보였다. 부리나케 화장실을 먼저 찾은 것은 남모를 신상의 내적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감내하기는 힘겨운 설사와의 전쟁은 출발 전 집에서부터 시작된 터였다. 아내에게 이번 산행을 말릴 수 있었던 명분이 충분했기에 내심 걱정하던 바였다. 대피로소 들어서자마자 우선 근심을 덜어냈다. 고산이 전해주는 빵을 받아들고 우적우적 씹어삼킬 무렵 동쪽 하늘에서 해가 빠끔히 고개를 내민다. 아침 노을을 헤치며 다가선 태양이 이제 더 이상은 밤의 세계가 아님을 찬란히 선언하고 있었다. 단체인듯 외국인 남녀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 지리산의 아침 해가 나뭇가지 사이로 인사를 해온다
아무리 갈 길이 급하다한들 발 아래 놓인 시원한 물을 마다할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돌틈을 비집고 나왔을 물의 무던한 노고를 가만히 음미해본다. 산을 찾으며 인(仁)만을 구가할 일이 아니다. 마시든 발을 담구든 물을 보면 지(智)까지 흡입할 자세를 가져야 한다. 산에서 만나는 샘물로 목을 축이는 것은 단지 몸에 수분을 공급하는 행위가 아니라 지혜의 흡입을 곁들이는 것이다. 앞서 간 친구들을 뒤좇아 다시 발걸음을 재게 놀리며 훠이훠이 산을 오른다. 다른 팀들의 일행과도 만났다 헤어지기를 여러 차례 하면서 그렇게 지리산과 하나가 되어갔다.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길은 다소 가파른 편이라 가끔 숨도 고르면서 오르게 된다. 그래도 개선문이라도 만나면 잠시나마 무슨 개선장군처럼 허세도 부려볼 법하다. 어느덧 출발한 지 3시간이나 훌쩍 지나버린 7시가 다 되었다. 그런데 지금 시절이 하수상터니 나뭇가지에 서린 눈기운은 또 뭐란 말인가? 눈을 부벼대며 눈을 의심해도 분명 눈임에야 5월이 그저 무색할 따름이다. 그러니 가던 발걸음이 아무리 바쁜들 어찌 아니 멈추고 배기랴. 엉성한 폼일망정 가까스로 스마트폰을 들이대 셔터라도 눌러야 조금은 덜 미안하지 않으리라.
- 프랑스 파리도 아닌데 여기에 웬 개선문이...
조금만 올라서면 천왕봉인데 너덜길이 제법 가파르다. 그래서 준비된 것이 천왕샘일 시 분명하다. 산은 산 그 자체로도 감동이지만 계곡이 보태지면 금상첨화다. 목마른 나그네에게 버들잎 띄운 한 바가지의 물은 로맨스가 되기도 한다. 남강의 발원지라는 샘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이상으로 더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비록 이름없는 산객이지만 목을 내주지 못하고 차마 그냥 지나치는 것은 어쩌면 예의가 아닐성 싶다. 힘든 일정의 막바지에 준비된 물을 마다할만큼 박정하지는 못해야 그래도 어느 정도 산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여 오라, 그대여! 잠시라도 발걸음을 멈추어 나를 들이키라. 지금까지의 노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그대 한 바가지 그득 느끼고 남강 쪽이 어드멘지 한번 바라볼 여유를 가지라. 내가 바로 남강의 발원인 것을... 그 남강 어디에선가 적장을 껴앉은 채 물속에 몸을 던질 만한 기개를 가졌던 강남콩 보다 더 붉었던 입술을 가진 여인의 전설도 어쩌면 바로 이 지리산에서 시작되었겠거니...
- 남강이 이곳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 누가 갖다 놓았는지 모르지만 붉은 바가지가 입에서 입으로 남강을 퍼 나른다.
남강의 발원지 천왕샘은 그렇게 조용히 부르짖는 듯했다. 남강의 끄트머리를 거머쥐듯 한 바가지 그득 물을 담아 뱃속에 흘려놓고 한껏 호기를 부려본다. 샘물을 모두 퍼먹으면 남강이 마를세라 차마 그러던 못하고 뒷 사람에게 양도하고 얼마 남지 않은 고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앞서 오른 친구들이 어서 오라 환영 일색이다. 이제야 개선문을 지나온 뜻을 알기라도 하듯 성큼 올라선 천왕봉. 1975미터의 봉우리에 1미터 75센치를 더해본다. 남한에서는 한라산 다음으로 높다고 했던가? 처음은 아니지만 역시 기념사진을 마다할 수는 없는 일. 정상석을 에워싸고 14인의 각기 다른 폼과 14가지의 얼굴 모습으로 그렇게 용고 28회 친구들은 같은 곳을 향해 바라보았다. 그 중 몇 명은 천왕봉이 처음인듯 수줍은 감격을 끝내 감출줄 모르고 기꺼워했다.
- 듣기만 해도 뭔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지리산 천왕봉에 용두팔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우리를 감동하게 하는 장면은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지금이 몇 월인가? 신록의 계절 5월. 무슨 소리. 이곳 지리산 천왕봉은 마치 세월을 잊은 양 하얀 면사포를 쓴 채그 현란한 자태를 뿜어내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상고대라 했던가? 바위와 나뭇가지에 온갖 천혜의 백기(白氣)가 덕지덕지 묻어난 정경이라니... 이루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장관이 안광을 어지럽혔다. 내 눈으로 보덜 안았어야 말도 안 된다고 우겨라도 볼 텐데.. 이건 정말 속된 말로 장난이 아니다. 일찌기 맹자가 말하였다. 자도(子都)를 보고도 예쁨을 모르는 자는 눈이 없는 자라고. 아무리 내가 시력이 나쁘기로서니 이 천하절경을 보고 눈이 없는 체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눈이 있는 자는 보고,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니, 참으로 백설(白雪 : 白霜)의 계절 5월의 지리산이로다.
- 5월 지리산의 암석
- 영험한 지리산의 상고대
- 고사목도 지리산 운치를 더해주는 데 양보할 줄 몰라...
- 추워 소름이 돋았나? 아니면 살이 쪘을까?
- 발걸음이 늦어지는 것은 내죄가 아니여...
아마 중산 같으면 이런 표현을 했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두 종류가 있다. 지리산 천왕봉을 가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족을 달자면 지리산 천왕봉에 가본 사람 중에도 두 종류가 있을 법하니, 상고대를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갈라야 할 지 누가 알겠나? 하여간 갈 길이 머니 언제까지 지체할 수 없어 떠나기는 한다만 아무래도 발걸음이 저절로 늦어짐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조금 가다간 이내 멈추어 서서 어설픈 동작을 취해가며 스마트폰에 하얀 지리산을 담기 일쑤이다. 하늘과 통하는 통천문을 지나고 제석봉을 거치면서 점점 천왕봉은 뒤켠으로 밀려났다.
이제 9시가 넘어선 시간 장터목 산장에 이르렀다. 오늘 두 번째로 만난 대피소이다. 우선 작은 집부터 찾아 시급한 현안부터 해결했다. 앞서 온 친구들이 라면을 끓이는가 하면 햇반을 데우느라 부산하다. 아침이 다소 늦다보니 자연 꿀맛이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논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정된 일이 없음을 확인하는 자리다. 성급한 친구들은 라면이 익기도 전에 능숙한 젓가락질로 세인의 시선을 집중하기도 한다. 제발 익은 다음에 먹자는 하소연도 하나의 양념이 되어 입맛을 돋구기에 충분하다.
워낙 여러 팀이 운집하다 보니 식사를 하는 곳은 장터를 방불한다. 그야말로 장터목 대피소라는 것이 걸맞지 않나싶다. 엊저녁 잠을 설치고 식곤증까지 겹쳐 나른한 가운데도 휴식은 잠시 뿐 장정의 길은 다시 이어진다. 대충 인원점검을 마치고 이제 다음 일정을 향해 천왕봉 쪽을 등지고 때로는 길고 때로는 짧게 삼삼오오 단속적으로 줄이 이어졌다.
- 식후 촬영, 뭔가 인원 수도 맞지 않고 표정도 가지 각색..
- 조금 수습되었지만 제만인 아직도 제대로 합류를 못한 겨... 재만 빠졌다는 게 중론...
10시 10분경 장터목을 출발하여 연하봉(1652미터)을 지나고, 1807봉, 삼신봉 등 봉우리 하나하나를 오르고 지나친다. 그럴수록 천왕봉은 차츰차츰 저 멀리 밀려나고 대신 세석대피소가 다가온다. 어느 사이 앞에 선 친구들과는 어느 정도 떨어졌는지 조차 가늠하기 힘들다. 천상 세석대피소에 가서나 서로 얼굴을 대할 것이다. 중산리에서 올라온 다른 팀들과도 여전히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몇 번을 만났다 몇 번을 떨어졌다 하기를 반복한다. 그들은 그들대로 우리들은 우리들대로 대충 알만하면서 또 그런 채로 여전히 모르는 사람들일 뿐이다. 이제 세석산장이 바라보이는 촛대봉 (1704미터)에 올라섰다. 지산 등과 옛날에 올랐던 추억을 곱씹아보며 저윽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본다. 거기 모든 것이 그대로 있건만 사람들은 바뀌었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갈마든 것이다.
12시 20분경 세석대피소에 내려섰다. 우리보다 훨씬 앞장 섰던 선두는 나름대로 테이블을 확보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목표는 숙소인 벽소령대피소까지만 가면 되었기에 그런대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러자 아예 이곳에서 잠이나 한숨 자고 가자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왔다. 일부는 아예 술잔을 기울이며 롱런할 생각을 하고 있었고, 일부는 나무 의자에 앉아 꾸벅꾸벌 졸며 잠시라도 단잠을 즐기고자 하였다. 술에 별 취미가 없고 나름 예민하여 눈도 제대로 붙이지 못하는 몇몇 친구는 지루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결국 한참을 보낼 것 같은 분위기는 예상보다 일찍 떠나는 쪽으로 정리되어 다시 길을 떠났다. 그러나 역시 시간적 여유가 있다보니 그렇게 서두르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세석대피소를 떠나 영신봉을 끼고 돈다. 천왕봉에서의 하얀 기운은 이제 온데간데 없이 새로운 기후대를 만난 양 이제 서서히 간간히 눈에 띄는 꽃구경도 하게 된다. 칠선봉을 넘고 1576봉(일명 망바위)에 올라서니 사람들이 여기저기 군락을 이루며 옹기종기 앉아 산세를 관망하고 있었다. 우리도 질세라 마춤한 자리를 찾아 다리쉼을 하였다. 누구의 배낭에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간식들이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어 눈은 눈대로 입은 입대로 호사를 누렸다. 다른 산객들이 하나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때쯤 우리들 또한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어느 새 출발의 대열에 하나둘 몸을 끼워대고 있었다. 산객들이 장사진을 이루며 마루금을 이어가는 주변은 온통 산, 산, 산이었다. 산줄기가 이리 꺽기고 저리 휘어돌며 첩첩산중을 이루니 그야말로 어머니 산이라는 지리산의 위용이 곳곳에 서려 있었다.
덕평봉(1522미터) 아래에 이르니 선비샘이 우리를 기다렸다. 이를 마시지 않으면 마치 선비 대열에서 벗어나기라도 할 것처럼 너나 할것없이 샘물가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하는 양을 가만히 살펴보건대 그저 샘물만을 마시는 데 그치지 않았다. 대부분은 아예 수통에 남아있는 물을 쏟아붓고 선비샘물로 새로 갈아넣는다. 언제나 이곳을 지날 때면 시원한 물맛 못지 않게 그 이름이 신선하게 와닿음도 선비라는 이름이 주는 그 독특한 이미지 때문이리라. 비록 같은 선비일지라도 소인 선비[小人儒]가 되지 말고 바르고 큰 선비[君子儒]가 되라는 옛 성현의 말씀도 이 물을 더 의미심장한 물로 기억하게 한다.
바위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진달래, 길 가장자리에 나풀거리는 조릿대, 작달막한 이름모를 꽃들 모두가 엄연한 이 산의 주인공이다. 가끔은 그들과 인사를 나누며 잠시 양해를 구하고 초상권을 사진으로 옮겨보는 재미도 산행의 일미이다. 가다가 멈추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는 가운데 벽소령은 여지없이 발 아래 떨어졌다. 앞서 간 친구들이 열심히 식사 준비를 하며 반가이 맞는다. 5시가 조금 넘어선 시간이다. 식사시간을 포함해 무려 13시간 반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거리로는 도상거리 17 Km, 실제거리 약19 Km 라고 한다. 두어 명의 친구가 힘들어했지만 모두 무사히 첫날의 산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 벽소령 대피소의 잠자리, 각자 모포 두 장씩을 분배받았다.
벽소령에는 이제 작게 움츠러 든 달과 함께 북두칠성이 뚜렷하게 도드라진 채 밤하늘을 수놓았다. 중산을 비롯해 몇몇의 친구들이 맨 정신에 잠들기는 뭐 했는지 식당한 켠에서 술에 지리산 기운을 타 마셨고, 잠자리에 들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나 또한 술은 눈으로만 마시면서 그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밤이 이슥해질 무렵 우리는 내일을 위해 어느 정도 눈을 붙여두어야 하겠기에 소등 시간에 맞추어 숙소를 찾아들었다. 잠시 누웠다 일어나면 어느 사이 지리산은 언제 그랬냐느 듯 또 그렇게 해맑은 모습으로 우리를 넉넉한 얼굴로 반겨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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