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者樂山[등산]/백두대간

신백두대간 1-2 : 중고개재 - 육십령

지평견문 2013. 3. 18. 23:49

 

    시작이 반이라면 우리는 어제 백두대간의 대장정의 첫발을 내디딤으로써 반을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작이 중요한 만큼이나 이제 그 지속이 그 결실을 담보할 것이다.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면 우리 또한 일찍 기상해야 오늘 일정을 무난히 소화해낼 수가 있었다.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든 이유가 다 그것 때문이 아니던가? 이렇듯 사소한 일 하나하나가 현재라는 시점을 중심을 과거와 미래가 밀접한 연관 속에 얽혀 있게 마련이다.

   4시에 기상이지만 약 1시간 전에 미리 깬 탓에 심심파적으로 독서와 새벽 하늘의 별과 달을 바라보는 행운을 누렸다. 4시가 되니 여기저기서 알람 소리와 함께 약속이나 한듯 하나둘 부시시 잠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하긴 약속을 한 것이지만... 산행의 원천도 역시 밥심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보면 아침을 거를 그들이 아니었다. 고추장북어국과 시큼되된장국이 몇몇 친구들의 부지런한 손에서 맛깔스럽고 준비가 되었다. 

   5시에 각자의 배낭을 둘러메고 머리에는 헤드랜턴을 비끄러맨 채 숙소를 출발했다. 주인집 아저씨의 차는 어둠을 가른 채 우리를 산밑까지 데려다 주었다. 짘게 깔린 어둠을 헤치며 잠시 올라가 중고개제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아무래도 어제보다 산행 시간이 길어지고 또 상경해야 한다는 부담이 아침부터 일찍 서두르게 된 것이다.

 

 

   우리끼리 사진을 찍다 보니 전체 사진을 찍을 수 없어 두 명이 교대로 찍게 되어 한번 더 모델 노릇을 하는 건 기본이다.

 

 

 

   하늘에선 달이 내려다보고 있건만 한편으로는 약하나마 눈발이 날린다. 길도 약간 미끄럽다. 앞서가던 제만이가 미끄러졌다. 다행이 크제 다치지는 않았으나 모두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하였다. 날이 희뿌염하게 밝아오면서 상고대가 눈을 현란하게 부딪쳐 온다. 당초 백운산에 올라 일출을 보리라던 기대는 접었다. 그러나 상고대가 신비로운 자연의 경관을 아낌없이 선사하니 그 또한 상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대가 높아질 수록 앞으로 나아가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눈이 서걱서걱 밟히는 것은 그런대로 견딜만 했지만 노면이 꽁꽁 얼어 몹시 미끄러웠기 때문에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아이젠을 착용하였다. 일행의 맨 뒤에서 친구들을 뒤 따르다 멋진 경치를 만나면 스마트폰 셧터를 누르다 보면 친구들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다시 부지런히 쫓아가 따라잡아 놓지만 어느 순간 또 그렇게 되기를 여러 번 반복하게 되었다.

 

 

 

   마침내 백운산(白雲山)에 올라섰다. 해발 1,278m나 되니 제법 높은 산이다. 주변이 상고대로 모두 허연 모습이다. 백운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나 봉우리는 전국적으로 꽤나 많다. 그러고 보면 높은 산치고 흰 구름이 걸리지 않는 산이 몇이나 될까? 대략 그런데서 붙은 명칭일 터이다. 지난 번에 왔을 때는 그야말로 일망무제로 사방이 탁 트여 있었는데 오늘은 상고대가 대신하였다.

 

 

 

 

 

 

   - 작년 백두산에 함깨 동행했던 중산과 함께

 

     상고대가 천지를 이룬 가운데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한 폭의 동양화 속을 걸어가듯 우리는 몽유설원(夢遊雪園)을 만끽하였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서 있을 이정표는 이제 우리가 지나 온 데와 앞으로 갈 곳을 가리키며 의연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나온 백운산이나 앞으로 갈 영취산 양쪽이 똑같이 1.7km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꼭 중간 지점에 다달은 셈이다. 산이란 참 묘한 것이라서 한참 멀어보여도 일단 가면 별 것 아닌 경우가 많다. 지나온 곳을 바라보면 제법 먼데 조금조금씩 온 것이 어느 새 이만큼이나 왔나 싶어지는 것이다. 마치 다시 가라면 못 갈것처럼 멀어보이는 저 쪽 산을 우리는 그렇게 왔던 것이다.

 

 

 

 

 

    이제 영취산(靈鷲山)에 올랐다. 불교의 성지인 고대 인도 마가다국 수도 왕사성에 있는 산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전국 곳곳에 불교적 색채를 띤 산 이름은 허다하다. 아마도 타 종교에 비해 불교가 일찍 이 땅에 퍼져 오래동안 사람들과 친근한 데다 신령스럽게 여긴 데서 비롯된 것일 게다. 이곳이 호남과 충남의 산줄기를 이어주는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의 출발점이라는 데 그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게다가 섬진강, 금강, 낙동강의 분수령이 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대표적 징표 중의 하나가 됨직하다. 

 

 

 

 

 

 

 

 

  산길을 가면서 무턱대고 앞으로만 치달릴 일이 아니다. 가끔은 뒤를 돌아보고 이미 내가 지나온 길들을 눈으로나마 더듬어볼 일이다. 나의 작은 걸음이 이어져 저 머나먼 곳에서 내가 왔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조금은 대견해질 수 있는 것이다. 분수에 넘치게 참람해도 곤란하지만 너무 스스로 초라해져 주눅들 필요도 없다. 가끔은 자신감을 스스로 충전할 필요가 있다. 그 때 세상을 위해 뭔가 보탬이 되는 일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자그마한 소망을 키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지나온 백운산 쪽을 바라보며...

 

   눈길을 지나치다 이번에는 조릿대를 만난다. 무릎에 겨우 머리를 부벼대는 작달막한 것도 있지만 때로 장부의 키를 훌쩍 넘는 녀석들도 만나게 마련이다. 바로 앞서간 일행의 모습을 순식간에 삼켜버리는 위용이 거기에 있다.

 

 

 

   가다가 전망이 좋은 바위라도 만날라치면 잠시 올라 주변 산세를 둘러볼 일이다. 그러기에 북바위는 안성마춤이다. 딱히 뭐가 있어서는 아니다. 그냥 그래야 될 것 같고 그러면서 시야가 트인 곳까지 한껏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만 해도 뭐가 상쾌함이 가슴을 파고든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옛 선사의 말을 입으로 되뇌어야 보아여 별 것 아니다. 그냥 몸으로 느끼고 눈으로 확인하면서 마땅히 그 자리에 머물러 지나가는 이들이 그들에게 보였을 관심만큼 대해주는 자연을 만나면 된다. 누군가 나보다 앞서 이 길을 지나갔고, 또 누군가 뒤미쳐 이 길을 지나갈 것이다. 그 때도 이 바위며 숲들은 온전히 자신을 다 내어줄 것이다. 그리고 말없이 무던히도 인고의 세월을 감내하리라.

 

 - 북바위 위에서 어디를 보시나/

 

 

   잔 수풀들을 좌우로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민령이 우리를 맞는다. 왜 민령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저 '령'이라는 글자를 통해 고개라는 것을 알 뿐... 이럴게 뜻 모르게 쓸 때는 온전히 우리 말이 아니다. 차라리 그럴 바엔 순 우리말로 된 것을 구사하던지... 하여간 민령은 백운산과 깃대봉 사이에 놓여 있고 임도가 중간을 가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나마 주변의 큰 소나무가 위안거리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큰 나무를 본 김에 한데 모여 기념사진을 박아본다. 아예 지그시 눈을 감는 친구도 있다. 나무는 소나무지만 우리를 충분히 가려주고도 남을 큰[大] 나무다. 그저 늘어지게 한숨 잤으면 딱 맞을 법한 그런 푸근한 나무다. 그래서 어떤 친구는 지그시 눈을 감아도 보고 어떤 친구는 누울 듯한 자세로 기대어 발을 내뻗는다.

 

 

 

 

 

 

    마냥 그대로 있고 싶단들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될 일이던가? 가야할 길이 앞에 또 그렇게 길에 누웠음에랴. 수풀 사이로 앞서간 이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우리는 그 길을 그대로 따라 피안의 세계를 갈구한다.

 

 

   구시봉. 이 또한 정확한 의미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옛날 깃대봉이었던 것이 이름만 바뀌었을 뿐 속 시원히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는 참 불친절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름은 있으나 잘 알 수 없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또 하나의 무명봉과 무엇이 다르겠나 싶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에 구시렁댈 뿐.. 아하, 그래서 구시봉인가?

그래도 해발 1,014m나 되는 높은 봉우리움을 알리기라도 하듯 돌 이마에 뚜렷이 각인하고 있다.

  

 

 

 

  구시봉에서 고개 들어 가는 쪽 방향을 바라보년 덕유산의 자태가 그대로 드러난다. 덕이 넉넉하다는 게 빈말이 아닌 듯 자태가 곱다. 몇년 전 지나며 눈에 담았던 설경이

아직도 진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 덕유산을 바라보며 다음을 기약해보기도...

 

  우리는 구시봉을 내려서 샘을 하나 만났다. 산에서 만나는 샘물은 참새가 방앗간을 그대로 지나치기 어렵듯 언제나 매혹적이다. 한 바가지의 물을 목에 흘려놓으면 시원한 액체가 산기운까지 듬뿍 담아 목줄기를 타고 내린다. 전신에 짜르르 느껴지는 산수(山水)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물, 산 수이다.

   우리는 산기슭을 타고 이리 구불 저리 구불 한참을 내려가는 동안 동료들을 만났다가는 흩어지고 흩어졌다 만나기를 몇 번이나 거듭했다. 그러자니 자연 발걸음도 지속을 반복하였고 그러는 와중에 마침내 목적지인 육십령에 도착하였다. 그 때가 오후 2시쯤이다. 아침 일찍 서두른 까닭에 비교적 이른 시간에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등산로 안내판에는 육십령에 대한 전설을 몇 개씩이나 쏟아내고 있었다. 영남과 호남을 가르는 이 고개는 안의감영과 장수감영에서 각각 육십 리 길이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 고개를 넘는 데 크고 작은 고개가 무려 60개나 된다는 설, 많은 산적이 포진하고 있어 한 60명은 사람이 모여야 넘을 수 있다는 둥 그럴 듯한 설명들이 난무하고 있다. 감기약이 많은 것은 제대로 된 약이 없어서라고 하더니, 그럼 이것도 그런 유는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저 밋밋한 것보다 그래도 이러한 서사 구조가 형성되어 있으니 재미있지 않은가? 이제 60고개에 가까워지는 친구들과 어울려 이러한 길을 갈 수 있다는 데 대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 이번에는 여기까지...

 

   이제 산행을 마쳤으니 뒷정리만이 기다래고 있었다. 일부는 화장실에서, 그리고 일부는 잔설을 이용하여 스틱이나 등산화를 닦았다. 뒤이어 제만이 차에 백두대간종주를 상징하는 우리의 깃발이 내걸렸다. 옹기종기 모여서 혹은 앉고, 혹은 선 채 기념촬영을 했다. 생각지 못하게 제만이 차는 백두대간 공식차량으로 둔갑을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내려올 때처럼 두 대의 차에 나누어타고 근처 장수군에서 간단히 뒷풀이를 하고 상경하면서 다음 번 산행에 대한 기대들을 다시 품게 되었다.

 

  - 제만이 차는 졸지에 백두대간 공식차량이 되고...

 

 

(*이상 사진은 포곡의 작품임)